대산농촌재단, 농(農) 지속가능 농업 전문가 신년 대담
건강한 생존 행복한 삶의 뿌리, 떠나지 않는 농촌 만들기
'사람이 핵심', 불안전 먹거리 노출 아이들 미래도 불안
김정열, 길종각, 문명우, 신채봉, 홍창욱, 신수경 토론

'억대농부 100명 만들기' 부추기는 일 없어야

유혜리 기자 | news@ecoday.kr | 입력 2018-02-05 13: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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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데일리 유혜리 기자]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어가기 뜨거운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안전한 먹거리확보,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 '농민'의 삼위일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6차산업의 중심이 흔들림이 없는 정책발굴과 실행가능한 '농(農)'찾기 위한 해법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한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토론자(무순)는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대표, 길종각 길벗사과농원 대표, 문명우 광주남구학교급식지원센터 센터장, 신채봉 조은씨앗농장 대표, 홍창욱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 실장,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이 2018년 국내 농업 현주소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도구와 장치는 어떻게 구축돼야 하는지 심도 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문명우 광주남구학교급식지원센터장은 친환경 농업을 살리고 지역과 상생하는 건강한 학교급식 모델을 만들었다. 공공기관 최초로 급식지원센터를 GMO 프리존으로 설정하고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길종각 길벗사과농원 대표는 전형적인 도시민으로 살다 17년 전 사과 불모지였던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 후 홍천군 최초로 사과 과수원을 열었다. 현재 70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고 있으며 100% 직거래로 판매한다.

신채봉 조은씨앗농장 대표는 충남 서산에서 18년간 유기농 벼, 옥수수 등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고 행복한 농촌의 삶을 아이들과 함께 꾸려가고 있다.

홍창욱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 실장은 제철 농산물을 꾸러미로 보내는 마을기업에서 일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꾼다.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집필하는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은 25년째 지속 가능한 농의 가치를 공유하고 농민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일에 힘쓰고 있다.

먼저,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은 대산농촌재단이 '삶의 다양성 존중과 상생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대표

사회를 이끄는 공익재단'이라는 비전을 세운 지가 벌써 10년이네요. 그동안 재단은 '농農의 지속 가능'을 위한 사업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문득, 농은 지속 가능한가? 지속 가능성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지속 가능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리더했다.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 동아시아 대표: 우리 농민들은 당연히 농업이 지속돼야 한다고 공감하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바꾸자는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요. 그런데 도시 사람들을 만나면 왜 농촌이 지속 가능해야 하는가를 물어요. "농업에 그렇게 많이 지원해도 안 되는데 더 해야 하나?"란 말이나 글을 접할 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싶고, 특히 보수성향 신문 사설을 보면 답답하죠. 우리에겐 절실한데 이 사람들에게는 절실함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식량 없이 살 수 있나요? 그 누구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고 우리의 생존, 삶의 질과 직결되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농촌은 그만큼 중요하죠. 외국에서 먹거리를 수입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행복한 선택이고, 우리 공동체의 건강한 삶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농촌이 문화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지만 농민으로서 느끼는 참된 행복, 농촌에 사는 즐거움과 감동은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죠. 농민의 정서, 농의 가치를 도시 사람들과 더 충실히 이야기 나눠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명우 광주남구학교급식지원센터장: "농촌, 그렇게 지원해도 안 살아나잖아" 라는 일반인들에게 우리 농촌은 이래서 소중해, 농업은 이런 기능이 있어, 하며 길게 설명하기 어렵잖아요. 하지만 "우리한테 농업 농촌이 정말 필요 없나?"라고 물으면, 필요 없다고 바로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필요하니까요. 그럼 그 지점에서 어떻게 살려볼지 질문하게 되는 거죠.

홍창욱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 실장(홍): '농의 지속 가능성'의 핵심은 사람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 아닐까요. 새로운 사람이 농촌에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촌과 조화하고 적응하는 데 긴 시간이 들지요. 이미 농촌에 있는 사람들이 농촌을 유지, 발전시키며 떠나지 않는 농촌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농민 인권, 농민 기본소득 보장 등이 그런 차원에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명우 광주남구학교급식지원센터장

길종각 대표: 1962년에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서울로 온 베이비붐 세대로, 당시 이촌향도의 전형이에요. 39살에 다시 귀농하니 이촌향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더군요. 저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사람에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어 귀농했어요. 그런데 경제적인 것,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어쨌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농업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고 이미 결론이 나 있으니까, 농촌에 젊은 부부가 없어요. 똑같은 자금과 노동시간을 투자했을 때 농업의 아웃풋이 떨어지니까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농촌이 됐다는 게 이미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 농촌에서 사람이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이 부분은 사회, 국가, 공동체가 책임져줘야 해요.


"농촌에서 산다는 것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운 농업 소득, 도시로 돌아간다
많이 벌지 않아도 행복한 삶, 농촌형 직장이 많아져야"


김: 도시에 가족 최저생계비라는 통계치가 있을 텐데, 농민들이 그 기준에 맞는 생계비가 없다고 어려워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7~8년 전에 상주에 귀농 붐이 불며 귀농귀촌센터가 세워지고 동네에도 청년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그 중 농사를 전업하는 사람은 1명만 남았어요. 남편과 저는 맨몸으로 내려와 농민회장 집에서 1년간 먹고 살면서 정착했지만 요즘 귀농하는 친구들은 1억 정도 갖고 내려와 땅, 집도 사고 훨씬 조건이 좋죠. 그렇지만 1년 농사지으면 생산 비용만큼도 수익이 안 나는 거예요. 처음 올 때는 농촌이 자기와 맞는다고 생각해서 왔을 텐데 농사를 3년 지어도 돈이 안 벌리고 모은 돈을 계속 까먹게 되니까 다시 도시로 돌아가요. 한편, 귀농할 때 대개 도시에서 살던 생활습관과 소비패턴을 그대로 가지고 오기도 하지요. 옛날 사람들은 일 년 열두 달 새벽부터 밤까지 종일 농사일하고 아이들 학비 외에는 돈을 쓰지도 않고 살았는데, 지금 젊은 세대도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게 과연 지속 가능한가 고민이 듭니다.

신채봉 조은씨앗농장 대표: 농산물 가격이 낮고 농사일은 힘들지만, 삶의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전혀 어렵지

▲신채봉 조은씨앗농장 대표

않다고 생각해요. 도시 사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이런 곳에서 아이들 뛰놀게 하며 사니까 좋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그만큼 도시에서도 다들 빠듯하게 살고, 농촌의 매력을 느끼지만 용기를 못 내는 거죠. 우리도 많이 벌지는 않지만 가치관을 바꾸면 없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져요. 아이들 사교육비나 가족 통신비 등 도시보다 훨씬 덜 소비하게 되니까요. 한 달에 50만 원을 벌면 저는 50만 원으로 살 수 있어요. 농사지은 먹을거리가 다 집에 있으니까 그게 가능하더라고요.

문: 농촌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그들이 아직 농을 제대로 접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봐요. 소비자 교육과 도시농업 등을 활성화시켜 농업 농촌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2016년 귀농귀촌인 통계를 보면 49만여 명이 귀농 귀촌했고, 그중 만 39세 이하 젊은 층의 비중이 50%예요. 물론 다 전업농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이 농촌으로 가고 있고, 저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홍: 2012년부터 제주에 귀촌 붐이 일었는데 2009년에 내려왔습니다. 이전에 저는 농촌이 떠나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도 농촌과 관련한 감수성이 남아있었기에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도시의 직장 생활과는 다른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꿈꿀 수 있는 농촌형 직장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일하는 무릉외갓집은 직원 5명이 주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해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가족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서고, 더 많이 일하고 돈을 더 번다고 더 행복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이처럼 농촌에 와서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 농업으로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농의 공익적 가치, 국민과 공감하려면
농민, 소비자 의식이 함께 변해야
국가 정책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요구가 필요, 선진국처럼 국가정책이 뒷받침돼야"


신채봉 조은씨앗농장 대표 : 도시 소비자가 생각하는 농과 농촌에서 생각하는 농 사이의 온도 차가 큽니다. 농촌이 지속 가능해야 하는 이유를 말할 때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농민의 권리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논의가 활발한데 그 필요성을 국민이 공감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길: 농업 농촌에 좋은 방향의 정책을 펴고 싶어도 납세자인 국민 대다수가 농민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낮은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처럼 일을 그만두면 누구나 농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 농민이 중요한 식량의 생산자라는 가치는 공감받기 어려울 겁니다. 농민을 전업농, 취미농, 은퇴농으로 구분해서 농민의 자격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고, 영농행위를 철저하게 책임지도록 관리하면 농민의 전문성과 신뢰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농민들도 농산물의 품질을 책임지고 농촌 환경 개선에 힘쓰는 등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농업계도 내부 힘 싸움을 지양하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김: 농민과 소비자의 의식 모두 변해야 합니다. 다만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국가 정책이 해야 하는 역할도 분명히 있습니다. 유럽 등 농업선진국만 봐도 농의 가치와 필요성을 기본 교육과정에 담아 꾸준히 전달한 과정 속에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났어요. 각자의 가정과 마을, 지역에서 출발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스스로 변화를 만들되, 농업을 자본주의적 논리로만 접근하는 농정을 비판하고 국가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봐요. 국가에 대한 정당한 요구 없이 소비자나 농민의 의식 변화만을 강조하면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 임금노동자의 생계비 안에서 소비자는 더 저렴한 먹거리를 선호할 수밖에 없고, 대체할 수 있는 수입산 먹거리가 많기에 농의 공익적 가치를 말할 때는 식량 생산뿐만 아니라 농촌의 가치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역 재생 등 농촌을 살리고 자연을 보전하며 지역이 황폐해지지 않게 관리하는 농민의 역할이 더 많이 이야기되면 좋겠습니다.

문: 불법으로 농지원부를 만들어 보조금을 부정수급 받는 일부 고위 공직자 등 적폐 세력이 농업의 공익적 가치 헌법 반영과 개혁을 막아온 장애물이라고 봅니다. 촛불국면을 넘은 국민들이니, 이제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리라 기대합니다.

"농민의 자격, 소비자의 권리
농민이 왜 농민으로 살 수 없나
얼굴 있는 소비자-생산자의 관계와 신뢰가 서로를 살린다"

 

▲길종각 길벗사과농원 대표

길: 농민은 농사만 잘 짓기도 어렵고 시간이 부족한데 이제 '6차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가공과 유통까지 다 해내라고 하니, 오히려 1차 산업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업농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기존의 법과 규정으로는 농민이 되기가 너무 쉽기 때문에 농업 보조금이 진짜 전업농에게 가지 않고 엉뚱한 곳에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요. 농민단체에서는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 우리 여성농민은 전업농으로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이미 오랫동안 농민으로 살아왔는데도 아직 농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여성농민도 농민으로 인정하라는 운동을 20년째 이어오고 있어요. 여성농민은 땅도 남편 명의로만 임대할 수 있고 농업경영체 등록을 할 때 경영주로도 인정받지 못했는데 꾸준히 의견을 개진해온 결과 조금씩 바뀌고 있죠. 그러다 보니 저희의 관심사는 농민의 자격 기준을 강화해서 아무나 농사짓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여성농민을 비롯해 실제로 농사지어온 사람들을 농민으로 인정하라는 것에 더 모여 있습니다. 농민이 아니지만, 농민인 척하며 보조금을 노리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에는 저도 공감합니다.

신: 2017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변화를 실감한다고들 하는데 농업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번 뉴질랜드에서 만난 한 농민은 "농민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바꿀 힘이 소비자에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농민과 소비자는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까요?

길: 100% 직거래로 사과를 판매하면서 제일 중요한 건 소비자의 '신뢰'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예를 들어 사과 농민들이 자조금을 조성하면 그 예산 중 일부는 청과시장에서 우리가 낸 사과의 품질을 검사하고 관리하는 인력을 두는 데 쓰는 겁니다. 그렇게 농민 스스로 관리하고 품질을 높이는 제도를 마련해 '우리 농민은 믿을 수 있다'는 국민의 신뢰를 쌓으면 많은 게 달라질 거예요.

김: 제가 10년간 '언니네텃밭' 꾸러미 사업을 하며 많이 어려웠던 것이 바로 인증제도예요. 한국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영농일지를 비롯해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한데 그 체계가 고령 여성농민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공식적인 친환경 인증 여부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의 농사를 이해해주는 분들과 거래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있다는 것에 여성농민들이 큰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 관계를 바탕으로 상주 로컬푸드협동조합의 설립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직한 먹거리를 통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고,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지역 공동체를 살리는 것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거죠.

홍: 무릉외갓집은 1년 치 회원비를 선불로 받고 농산물 꾸러미를 보내는 CSA공동체지원농업 형식입니다. 우리를 믿고 소비해주는 회원들이니 당연히 좋은 농산물을 하나라도 더 담고 싶죠. 인근 국제학교 선생님들이 100명의 외국인 교사에게 꾸러미를 매주 공급해달라고 했을 때도 그분들과 직접 만나며 교육, 체험을 통해 자주 교류하니까 더 잘 챙겨주고픈 마음이 절로 들더라고요. 이런 경험 속에서 얼굴 있는 소비자, 생산자 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길: 산골에 있는 우리 농장까지 찾아오는 소비자는 잘 없지만, 저는 농장 홈페이지에 꾸준히 제가 농사짓는 이야기와 일상을 나누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은 것 같아요.

저농약 인증 폐지 후 농민들이 GAP로 많이 건너왔는데, GAP는 제초제나 농약을 칠 수 있는 대신 철저하게 기록해서 혹시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그런데 과연 농업 현장에서 잘 관리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잔류농약이 없도록 수확 직전에는 농약 치는 것을 자제하는 시기가 있는데, 탄저병이 9월 초 수확기 직전에 많이 오고 비가 오면 2~3일 사이에 확 퍼집니다. 약을 치지 않으면 1년 들인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도 있으니까,

농민도 먹고 살려면 약을 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제도나 정책이 감시를 분명하게 하되, 소비자가 농업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농민의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직불제나 기본소득제를 확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소비자는 늘 의심하면서 사 먹고, 생산자는 늘 돈을 더 받으려 애쓰는 상황이 반복될 테니까요.

"친환경 농업과 공공급식
마을 어르신 설득해 친환경 농사, 마을이 달라졌다
평일 점심 1700만 명이 먹는 공공급식, 농업을 지킬 보루"

 

▲홍창욱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 실장

채: 지역에 파킨슨병을 앓는 고령농이 많은데 그게 농약 때문에 오는 병이라고 해요. 농촌에 혼자 남아 자식들 쌀 주는 재미로 농사지으시는 할머니들이 많은데 이분들도 농약 치는 게 제일 힘들다고 하시고요. 그래서 저희랑 같이 농사지으면 약 안 치셔도 된다고 마을 어르신을 설득해서 그분과 함께 친환경 논농사를 시작했어요. 몇 년 지으니 우리가 농약 없이도 잘 짓고, 보조금과 직불금도 받고, 밥맛도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함께하는 마을 분들이 늘었어요. 그러다 논농사 크게 짓는 마을 청년회의 젊은 대농들도 친환경으로 조금씩 눈을 돌리면서 규모가 커졌죠.

그러면서 못자리를 같이 하니까 서로 챙기며 창고나 기계도 함께 쓰고, 사람이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마을 할머니들은 땅을 지키고, 저희는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상생하는 거죠. 그러면서 마을이 많이 달라졌어요. 서산에서는 우리 마을이 제일 큰 유기농 벼단지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긴 거예요. 각지에서 아이들이 견학을 와서 도농교류센터도 생기고요.

그리고 친환경 쌀의 안정적인 판로를 위해 친환경 급식운동을 시작했어요. 우리가 건강하게 농사지었으니 급식에 넣어달라고 지자체에 요구해서 지금은 지역 초중고등학교에 우리 쌀이 들어가요. 우리 쌀이 들어가는 학교에 어르신들이 농민 선생님으로 아이들 교육행사도 나가세요. 한 학급당 한 대야씩 1년간 벼도 키워보고, 가을에 낫질하고 탈곡해서 쌀로 뻥튀기도 만들어 먹고요. 평생 글도 모르고 농사만 지었다고 대접받지 못했던 어르신들께서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돼 아이들과 함께하니까 정말 좋아하세요.

신: 학교급식은 규모와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니까 비록 어려워도 농민이 유기농업을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줍니다. 그런데 최근에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유기농산물이 맛뿐만 아니라 모양도 예쁘고 크기도 커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와 영양사가 아직도 많다고 해요.

문: 저는 공공급식이 우리 농업을 지킬 마지막 보루 중 하나라고 봅니다. 오늘 점심에 식판으로 밥을 먹은 사람이 몇 명인 줄 아세요? 초중고대학교, 병원, 군대, 복지시설까지 포함하면 1700만 명이 공공재원이 들어간 급식을 먹었어요. 공공 급식의 파급력을 볼 때 친환경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공급하도록 제도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2012년 광주시 교육청에 있을 때 우리가 매일 먹는 주식부터 시작하자는 취지로 친환경 쌀 공동구매 사업을 기획했어요. 당시 광주시 전체의 친환경 쌀 생산량이 300톤인데 그중 200톤은 판로가 없어서 그냥 일반미로 파는 상황이었고, 급식에서 학생들이 먹는 쌀 양은 3500톤이었습니다. 이후 급식에서 친환경 쌀을 우선 소비하니까 점점 생산량이 늘어나 2017년 기준 광주시 친환경 쌀 생산량이 불과 5~6년 만에 9배 가까이 늘었죠. 

▲대산농촌재단은 2018년도 지속가능한 농(農) 농업의 미래, 현안을 진단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으로 국가농업정책이 방향을 제시
하기 위한 신년대담회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사진 왼쪽부터)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대표, 길종각 길벗사과농원 대표, 문명우 광주남구학교급식지원센터 센터장, 신채봉 조은씨앗농장 대표, 홍창욱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 실장,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이 함께 했다. 


홍: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관련된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기까지 문 센터장님처럼 내부에서 사람들을 한 명씩 설득하는 노력이 큰 힘이 됐을 것 같아요. 신 대표님도 그렇고요.

문: 광주시는 쌀 공동구매를 할 때도 공공기관에서 먼저 가격상한선을 낮게 책정하지 않고, 되도록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생산자와 학교를 묶어줘 유통비용을 낮추고 대신 매주 도정한 신선한 쌀을 아이들에게 공급해요. 또, 보통 학교는 급식에서 양조 된장을 먹이지만 저희는 센터를 통해 전통 된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전통 된장이 5배 정도 높지만 저렴한 양조 된장은 전부 GMO 콩, 기름 짜고 남은 탈지대두에 MSG와 캐러멜색소, 향미증진제를 버무려 만들죠. 많은 아이들이 숙성과정 없이 화학조미료로 맛만 낸 된장을 먹고 있는 겁니다. 우리 센터는 영양사 대상 식생활 교육을 통해 이런 부분을 바꿔나가려고 해요.

전통 된장을 먹이고 싶은데 예산이 부족한 경우에 공동구매, 지자체의 차액 지원 사업을 활용하거나 영양사들이 한 달에 한 번 후식을 줄여 절약한 예산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김: 사실 공공급식에 대한 농민들의 딜레마도 있습니다. 공공급식을 친환경 급식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지만 말씀하신 광주 남구 사례와 달리 우리 지역은 학교급식, 특히 쌀 같은 경우 단가가 굉장히 낮아서 농민들이 고민이 많아요. 저도 작년에 유기농이지만 인증을 받지 못해서 무농약으로 쌀을 급식에 납품했는데 사후정산 방식이라 가격을 먼저 알 수 없다는 것에도 놀랐어요. 친환경 농업의 지속을 위해서는 광주남구학교급식지원센터 같은 곳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 지역에서 학교급식지원센터 설립을 적극 요구하고 농민들이 센터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2년 전 이야긴데, 한중 FTA가 발효되면 한국에서 소비하는 농산물의 80%를 중국 산둥성 한 곳에서 다 생산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광주 남구 근교에서 생산한 애호박과 풋고추는 광주 시장에서 바로 풀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농협을 통해 서울 가락시장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광주로 내려오죠. 그러면 그 신선도가 중국 산둥성에서 오는 농산물의 신선도와 과연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그걸 보며 공공급식을 지켜내고 이를 통해 지역 먹거리 순환체계를 만드는 지역 푸드플랜 수립의 중요성을 통감했어요. 공공급식을 통해 먹거리 선순환을 이룰 수 있게끔 관심 많이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길: 광주라서 가능한 사례라는 생각도 듭니다. 홍천군은 학생 수도 계속 줄고 규모가 작아 지역 농민들이 급식에 큰 관심이 없어요.

문: 그럴수록 더욱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 규모가 작을수록 급식업체들이 좋은 식재료를 잘 안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아요. 무농약 딸기 1kg 한 팩을 광주는 18,000원 정도에 매입하는데 만약 그게 어린이집에 공급된다면 인원이 3~40명밖에 안 되니까 유통비도 더 들고 가격이 두 배로 뛰어요. 마찬가지로 홍천처럼 학생 수가 적고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유통비 때문에 식재료 가격이 2배 이상 들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급식지원센터가 이 유통비의 일정 부분을 공공재원으로 충당해줘야 합니다. 지금 서울에서 하고 있는 공공급식 시범사업이 그런 맥락이에요. 완주 로컬푸드 생산자는 농산물을 서울에 내나 완주에 내나 똑같이 kg당 1만 원을 받지만 완주에서 서울 학교까지 가는 배송비용을 서울시와 완주군이 분담해서 지원해줍니다. 그 결과 서울 강동구 아이들은 저농약 사과즙을 먹지만, 홍천의 아이들은 그런 사과즙을 구경도 못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공공재원으로 급식을 바꿔야 합니다.

"농업 농촌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농사를 지으며 느낀 깨달음, 혼자 살 수 없다
농의 공익적 가치를 공감하고 지지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

채: 농촌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면서 농정과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도 농촌에 살며 조금 가난하고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걸 감수하고도 농촌에서 얻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절대 도시로 다시 가고 싶지 않고, 제가 농촌에서 사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다만 우리 아이들이 커서 농사지을 때는 모든 것을 경제적으로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기준으로 따지는 것을 떠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쪽으로 인식이 변해가면 좋겠어요. 들인 만큼 나오는 게 없는데 누가 농사를 짓겠냐고도 하지만 사실은 현대인들이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사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의 관점이 조금만 바뀌면, 복잡하게 부대끼며 사는 도시에서는 절대 느끼지 못했던 충분한 가치와 행복이 농촌에 있어요. 특히 아이를 키우며 그걸 더 많이 느껴요. 서로 눈을 맞추며 흙에서 뛰노는 이 귀한 시간을 겪지 못하고 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유기농사를 지으며 사람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사람들과 힘을 모아 친환경 쌀을 학교급식으로 먹이고, 아이들과 농사 수업을 하며 농민이라는 자부심과 농사의 가치를 발견하는 마을 어르신들, 함께 일구는 농촌마을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껴요. 지구가 자정작용을 하듯 인간도 깨달음을 얻고 자연과 가까워지는 삶을 이어가지 않을까 싶고 거기서 희망을 봅니다.

길: 도시민이 농의 가치에 공감하고 지지하려면 농민 스스로 자성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농업·농촌·농민의 문제를 특정 카테고리 안에 묶지 말고 복지차원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소득 농민의 세금 문제라든가, 지자체와 언론에서 '억대농부 100명 만들기'라고 부추기는 일 등도 반성하고 자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도시민이 농의 공익적 가치에 공감하고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공공급식이 복지정책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경제정책이라고 봅니다. 광주시가 무상급식 예산을 연 1200억 정도 쓰는데 이를 경제학자 케인스의 이론에 대입하면 내수 현금 흐름이 8000억 정도 발생해요. 부유한 아이들에게 왜 공짜 급식을 주냐는 논쟁을 하기 이전에, 그만큼 무상급식, 공공급식 지원 자체가 중요한 경제 활성화 정책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올해 8개 지자체를 선정해 지역 푸드플랜 수립에 1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하니 역량이 되는 지자체는 이걸 최대한 활용해서 지역 공동체가 뭉치는 계기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김: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어떤 걸까 생각해봤어요. 단순히 농민이 돈을 더 벌자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농민이라는 이유로 더 부당한 일을 겪고 어렵게 사는 사회가 아니길, 농민·비정규직·아르바이트 청년 모두 존엄과 권리를 지키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전우익 선생님 책 중에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란 제목이 있는데 그 말을 모토로 삼고 마을에서부터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려 해요. 같이 풀다 보면 살길이 보이니까요.

홍: 함께 간다는 것,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농업을 통해 깨달았다는 말이 무척 와 닿아요. 10년 뒤에는 농촌에 빈 공간이 더 커질 텐데 다문화 여성,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문화가 그 자리를 채우면서 전통적인 가치와 섞여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신: 농업 농촌과 함께하는 우리가 각자의 영역에서 꾸준히 자기 일을 하면서 또 이렇게 함께하며 공감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농農을 만들어가는 힘인 것 같습니다. 제공 대산농촌재단, 녹취·정리 유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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