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편집인/ 대표기자

[포토에세이] 달걀 한 꾸러미

김영민 기자 | news@ecoday.kr | 입력 2017-08-17 18: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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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데일리]계란, 달걀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온 몸을 감싸던 시꺼멓게 덮은 교복을 강제로 입던 시절, 어머니께서 계란하나를 부엌에서 후라이 한 후, 누런 양은도시락 밥 위로 올려 놓아 주던 때가 있었다. 학급 친구중에는 이런 계란후라이 조차 싸오지 않거나, 정말 된장에 고추 몇개를 담아 먹던 친구 모습도 이제야 기억이 난다.

 

외갓집에서 씨암닭을 천보자기에 싸서 덜컹거리는 도로를 족히 4시간 달려 와 애지중지 키워 초란은 아버지가, 계속해서 나온 계란은 쪄먹고, 계란찜하고, 특별한 날 소풍에 더 많이 싸 가던 그때 그시절은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의 보따리다.

 

성인이 돼 다방에서 아버지뻘 삼촌들이 쌍화차에 동동 띄운 노란 달걀을 흉내낸다고 한 두번 먹었던 기억도 있다.

 

단백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70년, 80년대 아침이면 계란 모서리를 쇠젓가락으로 톡톡 쳐서 구멍내, 입술을 바짝 대고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봐 쪽쪽 빨아 먹던 그때 그 시절의 계란 달걀은 어디로 갔을까. 기분이 업되면 계란 하나를 뜨거운 밥 위에 올려 놓고 간장에 비벼 먹던 그 맛은 어디로 감췄나.

 

요즘 '싼게 비지떡'이 된 계란이 유난히 수난을 당하고 있다. 늦가을 계란빵이 한창 거리 간식으로 팔릴 때까지 엊그제 였건만 이 역시 시대의 먹거리 유행에 따라 차츰 사라진 대신 아이스커피, 출처불명의 도살장 냄새가 버물린 코치구이 냄새는 청춘들을 손질한다.

 

 

먹거리의 안전성은 큰 대륙에서 벌어진 가짜 참기름에서 부터 빨간색소 가루를 집어 넣은 가짜 고추가루에 이르기까지 횡당함을 넘어 생명 위협하는 지경이다.

 

수요가 많아지니, 공급자인 생산자 입장에서 신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부를 들려다보면, 우리 사회의 잘못 낀 단추, 이익만 추구하는 모순 덩어리는 좀처럼 줄지 않아 중병을 앓고 있다.

 

가진 자들의 횡포는 가지지 못한 이들을 향해 늘 천한 일을 하는 계란 장수로만 각인된 슬픈 화살이 꽂혀 있다.

 

번듯한 직장에서 짤려서 나온 이들이 가진 건 밑천 몸뚱아리 하나, 계란 장수로 뛰어 들수 밖에 없는 우리 경제 한 단면조차도 거대자본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영락없이 영원히 밑바닥 삶을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굳이 광분해서 정치권을 향해 침 튀겨가며 하소연한 들 초스피드를 찬양한 세상은 하찮은 업(業)조차 관대하지 않는 모양새다. 과잉공급은 안전한 먹거리를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하니 원흉, 이렇다보니 선진국과의 격차는 멀어져 간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후후 불어 뜨거움을 식여서 먹인 계란 후라이 하나 조차 편안하게 먹일 수 없다는 건, 우리는 사회, 경제구조는 한참을 미국에 밀리고, 일본에 영영 치이고, 이젠 중국까지도 앞서가는 건, 누구의 탓인가.

 

그들이 말하는 그 천한 일하는 생존의 터조차도 내주지 못하고 어디로 증발했을까. 명절 앞두고 계란 한 꾸러미를 사들고 버스안에서 혹시나 깨질까봐 품고 온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계란 하나로 하루 단백질 보충이 충분한 그런 계란조차 입맞춤할 수 없는 우리는 무역수지 최고치니 호들갑이다. 

 

국가는 청와대에서 먹는 계란후라이, 저 교도소에서 먹는 계란후라이는 모두가 평등하고 당당하게 먹을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

 

달걀 한 꾸러미는 볏짚에 포근하게 감싸야 제 기능을 다하듯이 더 이상 친환경 먹거리 애창곡을 슬픈 장송곡으로 바꾸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1962년 가난했던 달걀 한꾸러미 가격은 천환, 빵한개는 백환, 사과한개는 백오십환으로 부르는게 값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달걀장수 구속 1호'라는 토막뉴스를 전했다. 서울에 사는 김 모씨는 물가조절에 관한 임시조치법 위반협의로 구속된 이유는 달걀 한 꾸러미에 47원 받게 돼있었는데 100여명에서 1원내지 8원씩을 더 받고 팔아 약 1500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라고 보도했다.

 

달걀은 밥 한끼 대용이 될 수 없는 세상이다. 식탐의 근본이 될 수 없는 흔한 식자재로 둔갑돼 가공식품의 노란자위로 쓰임새 역시 광범위하게 애용됐으니 '계란 살충제' 사태는 당연한 절차였고 더더욱 들썩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계란이 와써요~ 싱싱한 계란이 와써요.~ " 골목을 누빈 그 소리를 찾을 수는 없지만 생존이 아닌 더 많이 벌기 위한 계란장수 발줄을 끊어놓고 장본인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친환경 먹거리가 그야말로 황금시대를 맞을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달걀 한 꾸러미' 임홍택 시인의 시어를 소개한다.

 

"달걀을 담은 투명비닐 하나가
가장의 어께에 걸려있다
시장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한 손으로 길을 내며
조심스레 걷고 있다
뛰지도 팔을 내젓지도 못하고
낮은 자세로 걷는 시간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듯
어린 것들이 기다리는
둥지를 향하여
아직 보살펴야할 한 꾸러미
곡예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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