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1호선, 무선전신소, 중유발전소 등 상당수
도시 브랜드 이미지 제고, 관광상품으로 활용
문학 문화 예술 의학 종교 등 폭넓은 역사 산실

목포, 우리나라, 전남 최초 숨겨진 역사와 인물

김영민 기자 | news@ecoday.kr | 입력 2018-04-14 12: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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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목포시가 목포 역사를 총정리한 '목포시사'(비매품)를 편찬했다.

 

20년 만에 새로 쓴 '목포시사'는 목포를 애칭하는 브랜드가 다양하다. 항도 목포를 비롯 애향 목포, 일등 목포, 터전 목포, 기록 목포 등을 기존으로 총 5권으로 구성됐다. 3000쪽 분량에서 엿볼 수 있듯 '목포시사'에 목포의 역사가 총망라됐다.


특히 제1권 '항도 목포'의 목포의 역사에서 제5장 목포이야기에는 사회, 문화예술, 인물 등 3분야 목포 최초의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특별히 역사적 의의가 있는 최초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시는 최초의 역사를 통해 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한편 스토리텔링해 관광상품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최초 근대 도로망의 출발지는 국도1호선(목포~신의주)이다. 목포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도로망의 출발 기점이다. 유달산 우체국 왼쪽 화단에 기념비와 도로 원표가 조성돼 있다. 국도1

호선은 1906년 착공해 1911년 개통된 도로로 목포에서 신의주까지(939.1km)이다.

 

한국 최초 육지면 발상지는 고하도다. 1904년 일본 영사 와카마츠 도사부로 주도로 고하도에서 육지면 시험 재배가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산 육지면이 전국으로 보급됐다. 이후 목포항은 면화를 일본으로 이출(移出)하는 중심항구가 됐다. 고하도에는 1936년 건립한 조선육지면발상지지가 남아있다.


목포 최초 도 지정 문화재는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다. 고하도는 임진왜란 이후 1597년 일본이 재침입했을 때 이충무공이 율돌목에서 승리를 거둔 후 그 해 10월 29일 진을 설치하고 이듬해 2월 17일 진을 옮길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고하도 이충무공 기념비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1722년에 이순신의 5세손인 이상봉이 건립한 것이다. 1974년 9월 24일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됐다.


목포 최고(最古)의 기념비는 만호 방대령 선정비다. 목포진 역사공원 객사 내에 세워져 있다. 만호 방대령이 굶주린 백성들에게 진휼을 베풀어서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1714년 건립한 것이다.


전남 최초 천주교회,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는 천주교 목포 산정동 교회다. 1898년 7월 2일 지금의 위치에

 
부지를 마련해 목포성당이 설립됐다. 1951년 경동성당을 분리함과 동시에 산정동 성당으로 개칭됐다. '레지오 마리애'의 한국 발상지이기 때문에 한국천주교의 성지로 평가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e)는 라틴어로 '마리아의 군단'이라는 뜻이다.

 


전남 최초 교회는 양동교회다. 목포의 개항이 예견되자 미국의 선교사들은 목포를 새로운 선교기지로 선택했고, 그 중심이 된 교회가 전남 최초의 교회인 양동교회다. 선교 활동은 1897년부터 이루어졌고, 현 건물은 1910년에 신축한 것이다.


근대 기상 관측의 출발, 목포 최초의 기상대는 목포 기상대다. 1904년 대한제국 칙령 제10호에 의거 신안군 하의면 옥도리에 창설돼 기상 관측 업무가 시작됐고, 1906년에 유달산 노적봉 인근(일명 천기사)으로 옮겨졌다. 2004년 기상청에서 노적봉 옆 목포기상대 자리에 근대 기상 100주년 기념 표석을 세웠다.


전국 최초 무선전신 시설은 목포무선전신소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 시설로서 목포부 항정 2번지에 1910년 8월 25일 기공 1910년 10월 21일 완공됐다. 조선에 무선 전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 시설로 목포 중계, 근해 항로 선박에 대한 경보 및 해난 구조, 기상 관측 통보 등 임무를 수행했다.


광복 후 최초 발전소는 목포중유발전소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우리나라 첫 발전소인 목포중유발전소가 목포에 조성됐다. 민간기업이던 남선전기주식회사가 1948년 12월 원조자금을 받아 건설했다. 6.25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24일 폭격으로 소실됐다.


우리나라 최초 하구둑은 영산강 하구둑이다. 1978년 착공, 1981년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하구둑이다.

목포 최초 종합 시사 평론지는 목포평론지다. 1933년 1월 발간됐다. 호남 최초의 시사잡지로 평가받는다. 

 

목포를 주제로 한 최초의 대중가요는 목포의 눈물이다. 가수 이난영이 부른 국민가요 '목포의 눈물'은 1935년 오케이레코드에서 실시한 조선 10대도시 찬가모집에 응모된 작품이다. 1935년은 목포항이 전국적으로 가장 번성하던 시기다.


한국 최초 대중가요 노래비는 이난영 노래비다. 유달산에 있으며 1969년 시민(박오주)의 기금을 토대로 목포의 눈물과 가수 이난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대중가요비로서는 한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포 최초 한국인 설립 극장은 목포극장이다. 1926년 11월 19일 세워졌다. 1926년 목포에서 전라남도물산공진회와 조선면업공진회가 개최됐는데 이 대회의 개회를 앞두고 목포극장이 문을 열어 지역 문화 예술 진흥에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국내 최초 야외조각공원은 유달산 조각공원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야외 조각공원으로 1982년 10월 문을 열었다.

 


한국 최초 노벨 평화상 수상, 목포 최초 대통령 고 김대중 선생이다. 김대중(1924~2009)은 신안 하의도에서 태어났고, 목포에서 자란 정치인이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목포 출신 최초의 대통령이다.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편 소설가는 박화성 작가다. 박화성(1903~1988)은 목포 죽동에서 태어난 문인이다. 1932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백화(白花)'는 한국여성이 발표한 최초의 장편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가는 김진섭 작가다. 김진섭(1903~미상)은 목포에서 태어나 7살 무렵까지 생활했다. 일본 호세이 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본격적인 수필 작가이자 평론가로 활약했다.


호남 최초의 여성 화가는 김영자 작가다. 김영자(1922~2015) 화백은 1943년 일본 동경우에노 미술학교를 입학해 서양화를 배웠다. 1993년부터 목포 토박이 모임 ‘예목회’를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목포 최초의 시장은 김영하 선생이다. 목포시의 초대 시장은 1949년 8월 15일~1950년 8월 14일, 1년 동안 재직한 김영하이다.


우리나라 외과 전문의 면허 제1호는 차남수 박사다. 차남수(1903~1990)는 규슈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해 의사가 됐으며, 우리나라 외과 전문의 제1호로 1941~1990년 50년 동안 지역민을 치료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1941년 대안동에 '차남수의원'을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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