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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무서웠던 시절은 있었던가

김영민 기자 | news@ecoday.kr | 입력 2017-03-28 11: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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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 언론이 조롱받고 있다.


한 시인은 '뱀도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며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 나침반이자 돛대를 빗댔다. 심지어 혀와 독이빨을 동시에 가진 가장 간교하며 교활하다고 표현했다. 바로 언론이다.


이렇게 언론의 조롱거리는 사악한 뱀으로 비유하고 있다. 국내 기준으로 하루 수천 여 건의 뉴스들이 종이신문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넘나들며 자본의 지배속에 독자들을 능수능란하게 교접하고 있다. 일부 기사들은 알권리를 빙자한 희롱의 경계를 넘실거리고 있다.


기사의 질 분별력도 내성이 생긴 독자(애청자)들은 조롱받고 있는 언론들을 빗대서 작두(斫刀)를 탄 선무당으로 비유 되고있다. 혹자들은 북한산에 날뛰는 멧돼지이자 저 멀리 아프리카 주민들을 짓밟는 코끼리의 분노로 비춰지고 있다. 이쯤되면 사회적 공기의 공식은 깨진 셈이다. 언론의 격은 송두리째 뽑혔고 증발했다. 그래서 '절대 구독사절'과 '채널봉쇄'가 불문율(不文律)이 됐다.


한 때는 언론을 기관으로 분류했던 시절이 호황기였다. 사회의 공공재 역할도 하지 않는 사기업으로 허물을 벗었다. 기사는 곧 비즈니스 시스템으로만 작동되고 있다. 뜨지 못한 글과 영상들이 초췌한 몰골로 난도질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 한성순보가 언론의 기능으로 등장한 134년만의 성적표다.


불신과 증오의 출발점은, 정도를 벗어나면서부터다. 언론이 이익집단화된 곳곳에 가득 메웠으니 언제든지 감쪽같이 사라질 모래성이다. 이렇다보니 신뢰하지 못하는 독자의 시선은 영락없는 독사다. 그 어떠한 아름다운 활자나 화려한 영상조차 기만한 술책으로 비춰져 디덥지 못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우리 언론 신뢰의 몰락을 이렇게 정리했다. "메이저 언론들도 더욱 탐욕에 눈이 멀다보니 쥐떼처럼 창간창립 정신인 언론창달의 사명은 왜곡과 변질됐다며 그 증거들이 공산주의 대변지 노동신문과 총칼에 부역한 독재자 피노체트 시대의 못된 펜슬(Pencil)들이 이합집단화로 똬리를 뜬 꼴이다."고 비판했다.

 
정치가인 토마스 제퍼슨은 '나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정론직필은 곪았고, 타협 없는 진실보도를 허구의 가면이라고 꾸짖고 있다.


이러니 편집논조(論調)는 철새와 같고, 조삼모사처럼 조석으로 카멜레온 기사들이 기만술로 현란하게 칼춤을 추고 있다. 독사의 날름거리는 혀는 영락없는 부패한 정치와 흡사하다.


이런 현상은 자성이 없는 과거에 물들어 부만 축적해온 종이신문의 고령화도 한몫했다. 이런 증거들은 종이신문을 넘겨보는 정겨운 소리를 애써 찾아야 할 뿐이다. 가판대 신문은 전리품이다. 최고 발행부수는 허수로 도배하고, 방송은 전파낭비로 더할 나위 없다.


2017년 언론 잔혹사는 급기야 국가지도자 조차 언론을 찌라시로 내몰았다.


진실만 보도하겠다는 그리스 신화 '법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어(Astraea)의 저울을 깨는 것도 언론들이다. 삼권분립, 4권분립(四權分立)의 정의사회 구현을 필력으로 호외발행에, 속보에 열을 올린 언론은 국가 위 국민 위에 지배하게 됐다.


언론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도 없을 만큼 겹겹이 노략질은 또 하나의 청산해야할 적폐가 아닌가 싶다.


중앙 고위직공무원은 직설화법을 써가면서 '조중동' 외는 언론은 찌라시라고 폄하했다. 그의 말에 굳이 기준표가 무엇인지 묻고 싶지 않다.


조해일 작가는 "신문을 흉볼 수가 없다고 하며 흉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흉이 없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놨다.


국내 언론의 내실은 척박하다. 사막의 오아시스, 한 그루의 선인장 다운 언론을 찾아야 할 때다. 신학자 칼바르트는 한 손에 신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살라 했다. 백상 선생은 활자가 이마에 찍힐 만큼 언론다워야 한다는 의미를 되새김헤야 할 때가 왔다. 정론을 갈구하며 길 잃고 표류하는 독자들에게 등대지기의 미디어는 몇이나 될까.


2017년 봄, 변하고 있다. 독자가 뱀의 눈이며 혀가 되며 독을 품은 이빨을 가지게 됐다. 더 늦기 전에 독자의 편에서 세상을 이롭게 약자의 문지기가 될수는 없는 걸까.


새벽 신문은 뜨끈뜨끈해야 하며, 방송은 또렷하게 전파 낭비없이 눈을 뜨게 해야겠다. 이것이 언론의 참된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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