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노웅래

국민의 머리까지 국정화 하겠다구요?

온라인팀 | news@ecoday.kr | 입력 2015-11-09 18: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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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3월 대학교 학기가 시작되고 7월까지 서울 거리에는 최루가스가 없는 밝은 하늘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서울의 명동, 종로, 대학로, 그리고 대학가 앞은 이 시기 수건으로 입을 막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노웅래 국회의원

 

독재 정권에 항거했던 피끓는 청춘들을 대학 강의실이 아닌 거리로 내 몬 7,80년대의 상황. 이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와 대학에 와서 알게 된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미화되고, 독재가 개발의 논리에 정당화 되는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국정교과서는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부정당할 수밖에 없었고, 교과서 밖 세계와 너무 다른 현실을 접하면서 당시 청춘들은 고뇌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청준의 고뇌와 절망은 결국 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고, 5.16 쿠테타로 시작된 군부독재의 종말을 이끌어 냈다.


또한 군부독재의 종말과 함께 왜곡된 국정교과서는 결국 김영삼 문민정부의 탄생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그런데 2015년 현재 우리는 또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시대를 역행하는 암울한 현실 앞에 서있다. 

 

에브라함 링컨이 유명한 말이 있다. “한 사람을 평생 속일 수 있고,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은 평생 속일 수는 없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의 머리를 잠시 국정화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결국 독재타도 저항운동으로 이어져 독재정권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 지난 시절의 역사를 왜 돌아보지 못할까? 

 

박근혜 정부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이 지점이다. 새누리당 내부의 갈등과 국내 경제 파탄, 내년 총선의 불안함 등을 국정화 이슈로 돌파하는 데는 성공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내년 총선, 내 후년 대선에서 국민들의 표로 응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이며,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박대통령의 말에는 자가당착이 있다.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면 박대통령은 우리 시대의 사명을 저버리고 국정화를 하려는 것이며, 정쟁이 대상이 안 되는 것을 정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저 주옥같은 말을 안지키고 있는 것은 박대통령 바로 자신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다. 그것도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예고된 날짜보다 2일이나 앞당겼다. 

 

국민들의 반대 목소리는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국민들은 70년대 암울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마포구 상암동에 가면 박정희기념관이 있다. 박정희기념관 소개 글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역사의 전환점이 된 5.16 혁명을 시작으로 눈부신 조국의 발전을 진두지휘한 박정희대통령의 숨결을 느껴보십시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문구를 역사교과서에 싣고 싶었던 것일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재조명 한다고, 박정희정권을 재평가 한다고 하면서 위의 문구를 국정교과서에 실을 수 있을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국민 머릿속까지 국정화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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