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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구원의 통로는 바로 국민과 함께

김영민 기자 | news@ecoday.kr | 입력 2016-11-29 19: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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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판도라 상자는 열렸다. 신의 가호만 바라는 세상의 소용돌이는 요동을 치고 있다. 끔찍할 만큼 거칠 것 없는 새로운 세상으로 치닫고 있다.


19년 전, 교황 바오르2세는 록 콘서트 장에 등장했다. 이탈리아 보로냐시 한 가운데, 관중들은 놀라움과 박수와 함께 환호로 환영했다. 주일미사와 때와 같은 마음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날 교황이 만난 가수는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저항가수 답딜런였다. 교황은 35만 명이 모인 공연장내는 '블로잉인 더 윈드'를 가슴을 파고 들었다.


'바람 속에 실려 있다'의 히트곡을 부른 그의 노랫말을 인용해, "한 사람이 인생에 대한 질문의 답이 바람 속에 실려있다며 모든 것에 의해 흩어져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바람이 아니다."고 했다. 2016년, 지금 우리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바라지 않고 있다.


광장에 모인 사람과 사람 사이는 탄식과 울분, 절망의 아픔을 서로 치유하는 격려가 뒤섞였다. 이들의 손과 마음을 담아 둔 피켓에는 올바른 국가로 가야할 수많은 단어들이 덩실덩실 춤을 췄다. 

 

거리의 행상부터 심지어 공직사회까지 철저하게 1%만을 위한 치욕적인 정치의 굴레로부터 굴욕적인 덧칠을 거두기 위한  현장은 이미 역사의 증인이며 목격자들이였다.

 

늘 정치의 이방인이였던 청춘들마저 조국으로부터 배신당한 1%의 희망을 찾기 위해 안간힘은 차라리 눈물이다.


울분에 눈물이 마른 이 땅의 5166만 명 하고도 4300여명의 대한민국 사람들. 무지개 장밋빛 청사진은 허구를 넘쳐나고 무지막지한 거짓 정치의 희생양은 국민의 몫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누구의 잘못인가. 우리 정치사는 편 가르기에 치를 떨었다. 빈부 격차는 태산만큼 높아만 가고, 추악해진 우리의 공공의 적이 된 돈의 노예는 정치권까지 녹슬게 했다.

 

악랄하리만큼 아수라장이 된 괴물이 된 사회는 추악한 도가니는 촛불에서 촛불로 녹이고 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해와 배려과 배픔은 초침처럼 쫓겨나기를 반복된 사회속에서 갇혀 살아야 했다. 언제부턴가 사리사욕이 우대받는 사회로 둔갑했으며 늘 선한 서민들이 절벽으로 내밀쳤다. 

 

약자에게 단 한 평의 땅도 용납하지 않는 변질된 국가속에 가짜 보수 가짜 진보들은 아류에 기승한 또 다른 괴물들로 애국을 빙자해 기생했고 민주주의를 홀대하며 무자비함도 서슴치 않았다. 


이를 방관해온 부도덕한 지도자는 철저하게 이들 편이였으며, 덩달아 칼춤을 춘 대기업들은 권력의 중심 한 가운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몸은 맡겨왔다.


이익집단이 된 국가는 국민들을 상대로 최고의 꼭짓점에서 닫아도 닫아도 너무 꽉찬 판도라 상자는 서슬퍼런 국민들 앞에 벌거숭이로 개봉됐다.

 

역사는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2016년 광화문의 역사는 오늘 보다 내일을 위한 더 나은 세상의 첫 발을 대딛는 재단이 될 것이라고,


조롱과 희롱에 가까운 정치가 국민들을 버렸다. 수출의 길을 열어주겠다면, 온갖 특혜로 중소기업의 기술 강탈도 모자라 국내 시장이 좁다며 우리 청년들을 독일광부처럼 몸뚱이를 내다 팔도록 강요했다. 


상실의 시대에 내몰린 11월은 4월보다 더욱 잔인한 달이 됐다. 시린 손발을 동동 구르며, 차가운 광야의 광화문에 선 국민들은 풀 한 포기였고. 결코 쓰러지지 않겠다는 거대한 거목의 큰 뿌리가 되고 있다.


굳이 국가지도자의 역량을 덕망과 인지함을 요구하는 등은 부질없어졌다. 그 다음 다음으로 세울 지도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보는 혜안을 가지게 됐으며 울고 있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지친 어깨를 내밀어줄 참된 정치를 구할 뿐이다.

 
정치가 유린당한 2016년은 다시 오지 않도록 몸부림치고 있다. 내우외환으로 자욱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치부심으로 새 시대 새 정치를 세워야 한다는 함성은 차라리 아름답다.


작고 초라한 반도의 나라 대한민국을 벗어나려고 세간살이들을 내팽개치고 떠난 국민들을 붙잡을 지도자는 어디 있을지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정치가 더욱 갈증을 커졌다.


정치만큼 영롱한 매개체는 없다. 그러나 불순한 무리들에게 추악한 교접한 정치를 파헤친 알권리의 정의인 뉴스는 더 이상 흉기가 아닌 순결한 역사물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


19년 전 교황은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불렸던 발딜런의 'Blowin in the wind' 오늘의 헤드라인 뉴스처럼 말이다. 

 

지도자여 부끄러워하라. 자자손손대로 그리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게 무릎을 끊고 목숨으로 용서를 구하라. 세월호 아이들에게 눈물로 사죄하라. 거리로 내몬 수백만 아니 5000만 전 국민들에게 손을 내밀어라. 두려워 말라고.


'유일한 구원'의 통로는 바로 국민과 함께다. 그래서 이 땅의 충무공의 위용처럼 군인다운 군인, 정조와 같은 정치인다운 정치인, 세종대왕의 교수다운 교수, 내 아버지다운 아버지, 내 어머니다운 어머니와 함께 따뜻한 봄날의 대한민국을 다시 세워야 한다.

 

헌법의 존엄 가치를 지닌 대한민국은 영원불멸한 자유민주공화국이다. 더 이상 국민들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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