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기고] 과학기술과 평화

온라인팀 | news@ecoday.kr | 입력 2021-01-14 14: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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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환경데일리 온라인팀]과학기술이 전쟁의 판도를 어떻게 바꿨는지, 나아가 제국의 패권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문명의 이기, 즉 과학기술의 결과물인 총과 쇠가 신대륙의 농경사회를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설명한다. 린 화이트는 '중세의 기술과 사회변화'에서 작은 마구에 불과한 등자(鐙子)가 기사(knight) 계층을 만들고 중세 봉건사회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다분히 기술결정론의 시각이지만, 과학기술이 전쟁과 국가 간 역학의 구도를 바꿔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순신의 전설적인 대첩들은 왜(倭)가 갖지 못했던 화포에 힘입은 바 크다. 19세기 말 일본에 들이닥친 흑선(쿠로후네)의 충격과 조선을 농락한 양요(洋擾)는 서양 과학기술의 힘을 상징한다.

제1.2차 세계대전은 과학기술과 전쟁의 관계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1차 세계대전에는 비행기, 화학무기, 탱크가 당시 기술의 총아로 참전했다. 과학기술과 전쟁의 결합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극명해졌다. 로켓, 제트기, 레이더, 야전 응급키트, 컴퓨터가 전시에 개발되어 전쟁에 뛰어들었다. 무엇보다도, 연합군에 의해 베를린이 함락되고 나서도 최후까지 항전하던 일본을 항복시킨 것은 원자폭탄이었다. 원자폭탄을 낳은 맨해튼 프로젝트는 전후 7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현대 과학기술과 사회를 규정하는 데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첫째, 맨해튼 프로젝트는 국가 주도의 임무지향 연구개발 프로젝트로서 정부가 목표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자원을 투입하고 산학연을 동원한 체제의 시초이다. 또한 그것은 승전국 입장에서는 눈부신 성공의 경험이었다.

둘째, 한때 실용성이라고는 없는 순수 기초학문으로 여겨졌던 과학지식도 적절한 응용연구와 개발을 통해 가공할 만한 위력 '그것은 군사적인 것일 수도 상업적인 것일 수도 있다'을 지닌 기술로 탈바꿈될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됐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출발한 질량-에너지 등가이론, 어니스트 러더퍼드와 마리 퀴리의 방사선 연구로부터 시작된 핵물리학이 인류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의 힘이 된 것이다. 종전이 임박하자 미국의 과학자들은 전쟁 시기 국가적 동원체제의 일부였던 과학기술 지원이 중단될 것을 우려했고, 국가 차원에서 과학이 여전히 유용할 것임을 주장했다.

백악관 과학기술국장이던 입자물리학자 버니바 부시는 'Science, the Endless Frontier'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과학은 국가안보, 공중보건, 공공복리 증진의 핵심'이므로 '과학 진흥은 국가의 새로운 책무'라고 규정하고 기초과학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 지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보고서는 미과학재단(NSF) 설립으로 이어졌고, NSF는 영국의 연구회와 더불어 서구식 과학 지원 체계로서 세계에 확산됐다. 국가주도의 임무지향 연구개발 프로젝트로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유산은 냉전기 아폴로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냉전기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체제경쟁의 시기로, 과학기술은 체제의 우월성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이 시기의 과학기술은 소위 '자존심 경쟁'으로서 거대과학이 지배했다. 연구개발에 대한 재정투자의 효율이나 효과성보다는 적국을 능가하는 규모와 선점효과가 중요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일단락됐된 과학기술과 냉전의 관계는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경쟁 차원에서 기술냉전으로 부활하고 있다.

미중 기술냉전은 미래의 경제와 국가안보가 걸린 패권 다툼의 핵심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표면에 드러난 것은 화웨이 장비의 데이터 백도어 논란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 먹거리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하드웨어 인프라에 해당하는 시스템반도체 기술에서 중국의 추월을 용납할 수 없다는 서구 자유주의 진영의 아젠다가 깔려 있다.

한편,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제부흥은 제조업 부문에서의 혁신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자동차 산업에서 일본의 약진, 트랜지스터의 발명 이후 '소니'로 대표되는 일본 전자산업의 도약은 1980년대까지 일본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일본의 추월에 충격을 받은 유럽 학계는 일본의 성공신화를 면밀히 분석했는데, 그 결과물이 '국가혁신시스템 관점'이다.

요약하자면, 일본의 기술혁신과 고속성장은 마치 전시 동원체제와도 같은 국가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다만 그 체제의 목적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글로벌 무역 경쟁에서의 승리로 치환된 것이다. 국가혁신시스템은 군국주의 시대 권위적인 정부의 전통을 경제전쟁에 임해 되살려서, 정부의 지휘 아래 산학연관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체제를 설명한다.

일본을 벤치마킹해 산업화와 경제개발을 이뤘고, 몇몇 산업부문에서는 일본을 추월하기에 이른 한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이러한 관점은 서유럽 국가들을 필두로 현대 과학기술혁신정책의 기본을 이루는 틀로 자리 잡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해 채택돼 선진국들의 과학기술혁신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 과학기술혁신정책을 구성하는 양대 축인 미국식 선형모형이나 유럽식 혁신시스템 관점이나, 그 뿌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형성된 과학기술과 국가의 관계에서 유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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