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본지 편집인/ 대표기자

환경정의 본색 칼날 세우다

김영민 기자 | news@ecoday.kr | 입력 2017-08-15 09: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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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데일리] '환경정의'에 대한 찾아봤다. '환경정의'는 말 그대로 모두의 생태계와 우리 주변에 놓인 반환경적인 범죄행위로 인해 위태로움, 생명 경시한 억압적인 물질주의의 가치관을 파괴해온 무질서를 바로 잡는데 있다고 나와 있다.

 

과연 환경정의의 수호자는 없었건가. 결코 아니다. 세계적인 환경 석학자에서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각 정당 일부 의원, 환경과목으로 미래 환경보호를 가르치는 교사와 분리수거만큼은 엄격하게 하는 에코맘, 생명을 존중하는 목회자 모두가 환경정의의 지켜려는 수호자들이다.

 

생활습관에 환경을 파괴하는 시대다. 개개인의 편리함, 익숙해진 반환경적인 생활속에 환경정의를 앞세우면 곧바로 반기를 들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선진문화를 우리의 방식대로 재해석과 자연에 지키는데 최소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하루에 버려진 일회용컵이 얼마인지, 하루 동안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얼마큼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당연시된지 오래다. "경제생산활동을 하기 위한 불가피한 현상, 먹고 사는 문제"로 치부하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을 잃었다, 그만큼 긴박해졌다. 지금부터라도 환경의 소중함을 사회적 공론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의식에서 환경정의는 출발된다. 


최근 환경정의가 고개를 들었다. 그 시작의 발화점은 '4대강사업, 가습기살균제, 탈원전'이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이는 직접 민주주의 실천하려는 본능적인 행동강령이다. 환경정의 본색은 더 이상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는 자연이 주는 고른 혜택을 받을 권리장전과 같은 인간과 동식물의 모두 신성불가침의 권리다. 그동안 온전한 자연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우린 '갑'이 묵인하고 동조한 반환경적 활동으로 '을'인 힘없는 서민들이 역습을 당했다. 누구도 동식물의 생존을 강탈할 자격은 없다. 피해 범위는 아이에서 군인 등 누구나 될수 있다.

 

환경정의 수호는 태초의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피조물의 터전이 되는 생태계가 반듯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때 가능하다. 함께 노력해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넘겨주는 책임도 있다. 그래서 지구는 푸른별이다. 이것이 자연친화적인 지구촌 인류의 숙명적인 시작과 끝이다.

▲사진 이수진 기자

 

현대판 환경정의가 광복의 뿌리는 1945년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3년 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로 부터다.

 

일본은 35년의 긴세월동안 금수강산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탈과 훼손했다. 멀쩡한 산에 말뚝을 박았으며, 다양한 종자들과 문화재를 가져갔다. 어디 그뿐이건가. 순수한 자연을 짓잛고 생명의 존엄성까지도 씨를 말리는데 악행을 거듭했다. 우리 전통을 갈아엎는 35년의 일제강점기 추악한 DNA는 영화 에이리언처럼 기성세대들의 뼛속 깊이 꿈틀거린다.

 

친일의 잔재 악령들은 7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태초에 신이 준 각각의 역할을 준 동식물 경시와 균형을 깨는데 분수처럼 쏟아냈다. 그 흔적들은 개발만이 살길, 무조건 허물고 부수면 돈이 된다는 유일한 지름길인냥 '선진한국', 'G20(Group of 20)' 허구로 포장한 채 '환경정의'를 난도질이다.

 

그래서 흙을, 물길을, 갯벌까지, 판박이 흉물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져 바람길조차 기형적으로 바꿔 버렸다. 천만 다행스럽게 동전의 양면과 같은 보전의 가치를 이제는 보존으로 지켜야할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어쩌면 동시대에 사는 "우린 참 복이 있는 국민"일지도 모른다. 도담교회 오수진 목사의 성경말씀이 자연은 그리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내주지 않고 있는다말로 통하고 있다. 그런 징후들이 더 길어진 가뭄, 더 무서운 폭염, 종 잡을 수 없는 기습폭우, 겨울이 없는 기후변화 기상이변 등이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다.

 

자연재해는 어떠한 기술력으로 막을 수 없다. 뒷골목 전봇대에 너덜거리는 낡은 표어 '저탄소녹색성장'이나 '가짜 친환경 제품 기술'등은 왠지 오금이 저려오고 섬뜩하다.

 

인류의 공통 자산인 생명다양성은 인류를 살리는 유일한 신의 도구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재앙을 막는 원천의 힘을 가졌다. 이런 힘을 조화롭게 지켜준다면 보편적 가치인 자연의 가치를 되돌릴 수 있다. 이것이 환경정의의 회복운동이다.

 

요즘 국민적 화두인 '가습기살균제', '탈핵 탈원전' 당위성과 사라진 '4대강 금빛 모래 백사장' 찾는데 힘이 실린 것도 환경정의의 본색이다. 4대강 사업 재조명 톺아보기는 결코 보복의 성격이 아니다. 대한민국 친환경의 참됨을 갈망하는 염원이자 인간의 본성 찾기와 자연에 순응과 밀접하다. 두려움과 지친 국민들이 '자연', 가장 자연스럽게 그대로 두는 곳만을 찾아 헤메이는 이들이 늘어난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본지는 이런 풍토를 연중 시리즈로 환경정의의 본색에 대해, 잘잘못을 바로 잡고, 속죄하며, 환경을 빙자해 국민들이 누려야 할 행복추구권을 강탈해온 '자연을 자연스럽게 두기'에 뜻을 모으자는 의미다.

 

지금까지 수집한 환경정책의 만행, 환경부로부터 받아 착취한 반환경 녹색기술과 헛돈만 쓴 연구과제(R&D) 사업, 국가가 국민들을 배신해 환경피해자로 만든 수많은 건은 당시와 비교해 존속 여부를 짚어보겠다. 아울러, 환경분야에 종사자들의 양심선언 기회도 만들어 주는 목적도 있다. 무릎을 칠 정도로 국내외 유수한 환경관련 기술과 정책이 얼마나 이롭게 다가왔는지 함께 누려야 할 혜택은 어느 정도였는지 허와 실도 간추려 보겠다.   

 

또 살펴보면, 겨우 4년의 정권을 쥔 트럼프 정부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떡 주무르듯 협약서를 찢어버리고 기독교정신 하나님의 뜻도 반기를 든 것은 아메리카의 미래를 깨는 행위로 볼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흠모해온 아메리카드림이 악몽으로 치닫는 것은 다국적 기업들이 반환경경영을 묵인하는 것도 진배없다. 자칫 대문 밖에 더 큰 재앙이 서성거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환경의 가치를 말살해온 과거 정부의 악령들이 언제까지, 7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고 억압과 착취, 공갈과 겁박의 DNA를 품고만 살것인가. 안타깝게 '환경', '친환경', '녹색(Green)', '에코(Eco)'를 상품화한 수많은 어워드(AWARD) 남발로 인문학적 환경 학문을 더 이상 농간(弄奸)하지 않길 주문한다.

 

지구의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할수록 환경은 가장 귀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친환경을 빙자해 살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같은 배후에는 정치가들의 기만술에 찬동한 어용학자, 어용언론, 어용환경경영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더렵히지 않길 바라며 혹여나 받은 불명예스런 녹슨 훈장이나 벽에 걸린 표창장을 따위는 당장 휴지통에 집어 던지고, 불태워야 하겠다. 이쯤되면 스스로 답해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가 우주 밖에서 보는 지구의 푸른별 만큼, 높고 깊다. 솔직히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안병욱 차관에 대한 행동 하나하나의 눈길이 모아지는 건 본지만의 일탈은 아니다. 환경은 이로운 과학과 함께하고, 문화속에서 환경의 풍류를 찾고, 심신을 유익하게 하는 스포츠까지 자연이 소중함으로 이어진다는 점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203년 전 다산(茶山)의 형 정약전이 귀양한 흑산도 연해의 수족(水族)을 다뤄 후대에게 던진 '자산어보'는 앞선 자연주의자 선각자가 다양한 생명종에 부여하는 의미가 들려다봐야한다. 생물학자가 아닌 그가 학문적 태도에 노력함은 높이 평가받을 대목이다. 자산어보가 재조명되는 2017년은 환경 학문의 출발점이다.

 

환경정의의 본색(本色)을 사전적 해설로 '1. 본디의 빛깔이나 생김새', '2. 본디의 특색이나 정체'로 구분했다. 본색은 One's Real Character, '진정한 성격, 정책성' One's True Colors, '진정한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환경부의 진정한 색채와 성격은 그동안 어떻게 색칠해왔고 앞으로 어떤 색감을 줄수 있을까.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몇점 정도이며, 낙제점에서 벗어날 만족할 만한 합격 카트라인은 어느 정도인지 질문을 던진다. 본지는 '환경정의 본색'의 개념 안에서 이방인의 입장이 아닌 오피니어 리더 자세로 '본색'을 게재한다. 그 첫 번째로 '환경의 광복절'은 세계환경의 날이 아닌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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