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본지 편집인/ 대표기자

환경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정의'

김영민 기자 | news@ecoday.kr | 입력 2017-11-05 19: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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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데일리]우리 국민 한 사람당 국민소득(GDP)이 '2만 9000 달러'라고 한다. 누군가는 지구촌 상위 5%급에 해당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근접했다고 극찬론까지 과대포장했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접근성은 가까웠을 지 모르지만, 서민들에게는 아직도 1만불 시대에 머물고 있다. 이들에게 달라진 사회풍토나 국가경쟁력, 일반국민들의 체감도는 피부에 와닿을 만큼 숫자 수치에 무감각한 것이 현실이다.

 

3만 시대 도달했다면 구멍난 튜브에 헛바람만 불어넣고 있는 것은 아닌가. 3만 달러 국가 다운 주권을 가진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어느 정도인지 좀처럼 윤택한 부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아직도 척박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수 많은 서민들이 국민전체의 반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론몰이, 조직적인 조작에 능수능란한 세력들이 서민들의 부푼 꿈곁에서 최면을 걸고 있어서다.

 

뜬금없이 은근슬쩍 슬그머니 손에 닿을 듯 도달한 3만 달러 시대라니, 설령 도달했다고 해도 그 수준에 걸맞는 우리들 스스로 사회질서와 규범 준수, 심지어 환경의식은 우리보다 앞선 3만불 국가의 국민들과 견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것에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오랫동안 정체된 사회적인 갈등, 경제불균형으로 휘말려 살았다. 희망의 돛대에 순풍은 불 기세가 없었다. 표류하는 난파선 형국이다. 이렇게 내몬 주범(?)은 질릴 때로 진을 뺀 정치세력들이다. 이젠 이골이 나 녹다운 상태다.


이미 3만 불에 진입한 국가들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다. 일본, 핀란드, 영국, 독일, 아일랜드 주한외국대사관을 통해 얻은 10여 가지를 간추려봤다. 충격적이다. 우리와 너무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현수막과 무질서 간판이 없다. 도시보다 농촌살기를 더 권장하는 시스템이 잘돼 있다. 대학졸업장보다 전문직에 인생보장 학습프로그램이 잘돼 있다. 오래된 건물이나 전통적인 거리나 사적지는 잘 보전하고 있다.

 

친환경정책을 경제정책에 상위법으로 작동되고 있다. 국가로부터 신분보장을 받은 공직자들이 더 청렴하다. 공직자들은 끊임없이 창의적이며 봉사정신이 투철하다. 기업들은 기부문화가 뿌리내렸고 타인 배려 문화가 습관화됐다. 함부로 땅과 강 바다를 망치는 개발은 매우 신중하다.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법과 원칙을 중요시한다.


위에 나열한 것들과 우리의 차이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된다. 알고 보면 낯 뜨겁다. 친환경을 운운하며 반환경적인 정책에 둔감하거나 동조했다. 녹색실천을 외치지만 정작 자신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자연을 짓밟았다. 원전 불안감에, 기상예보에 민감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대중교통 이용, 일회용 컵쯤 버리는 것은 나와 상관없이 행했다. 모두가 스스로를 관대하고 용인했다.


3만 불에 안착한 일본(1992년), 아일랜드, 핀란드(2002년), 영국 등이다. 미안하지만 스마트폰 하나 잘 만들지 않는데 선진국이다. 다시말해 선진국 다운 시민의식과 정치수준이 높다. 


놀라운 목격담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무역수지 적자의 일등공신인 해외 여행객들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반도 상공이 뿌옇다며 혀를 치는 이들을 봤다. 이들 국민이 아닌 객(客)들로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을 동경하면서 무엇을 보고 돌아왔을까. 한 폭의 풍광에 흠뻑 젖어 감탄사를 담아온 여행 가방을 푸는 것과 동시 일상은 개발도상국 수준의 시민정신을 쉽게 목격되고 있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을 경멸하는 풍토가 만연한 우리의 수준이 더 참담하지 않을까.


최근 4차 산업혁명 열풍이지만 본질은 친환경으로부터 출발이다. 좁은 땅, 그것도 반쪽짜리 나라에서 우리끼리 과다 경쟁에 미쳐있다. 옆 가게가 큰 간판을 걸면, 더 큰 간판을 인도로 내밀어야 직성이 풀리는 조급증에 걸려 있다. 이를 교묘하게 대기업들은 초대형화로 건물마다 그들의 점포다.


전국토를 갉아먹은 아파트 공화국은 대한민국뿐이다.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근로자 생명을 지켜줄 매뉴얼은 전시품이 된지 오래다. 야반도주하듯 비오는 날과 바람 부는 날은 굴뚝과 공장 하수구는 늘 바빴다.


과연 3만 불 시대에 걸맞는 리더들은 어디로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몸에 밴 관습 타파할 용기조차 없는 사회지도층은 일본에 치이고, 차이나파워(China power)에 야금야금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우리 손안에 든 것마저도 빼앗길 위기에서 자신들의 밥상만 챙기기 급급하다.


우리의 로망인 일본, 영국, 핀란드, 미국, 독일은 물론 중국조차 이길 하든카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펼쳐 달라 주문하고 싶다. 3만불 시대의 선진국의 공통점이자 기준점은 친환경이 강하다. 우리 환경의 현장은 풍비박산이다. 환경부로부터 돈 빼먹었던 관련 단체 협회 공제조합들은 공익보단 사익집단이다. 이들에게 존재하는 3만 불 시대를 꿈꾸는 건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 궤변이다.

  
석면오염부터 방치된 지 오래됐고 농촌 도시할 것 없이 농약과 화학, 중금속에 찌들어 토양, 강, 바다 생물은 회복불능으로 위기일발이다. 4대강 사업의 존재성이 전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환경부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장관은 "국민의 환경부가 되겠다."는 결의한 태도를 보였다. 장관 말처럼 국민들로부터 신뢰회복을 할 수 있을까. 환경부의 태생적 본질과 최고의 덕목은 환경정의 수호와 환경윤리 준수다.


내년으로 성큼 다가올 '자원순환기본법'과 '가축분뇨법'시행은 파장도 예고된다. 아직도 한 귀퉁이에서 "환경부때문에 경제를 발목잡는다"며 선동한 국회의원을 보면 2009년 당시 건설폐기물법 시행때 업자로부터 협박을 받았던 고위직 공무원은 중남미 국가의 마약전쟁과 흡사한 연결점이 그려진다.


표를 의식해 긴 유예기간을 줬던 가축분뇨법 시행은 밥줄을 정치화로 내몬 촌로들에게 더 이상 소 돼지를 뒷수발한 하도록 방치한 우리 경제구조부터 바꿀 때다. 문재인 정부의 과감하고 도전적인 역량을 모아야 한다. 자식들 대학졸업장의 밑천이였던 소돼지가 3만 불의 시대 표상이 아니란 말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체질개선은 친환경시스템의 대변혁이다. 충분히 바꿀 수 있는 능력과 역량들이 잠재돼있다. 다만 평소에 '환경(環境)'에 '환(環)'조차 무관심했던 지도층들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울러 육식문화의 탐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자영업의 시장경제를 재정비해야 한다.


살충제 계란을 무시한다면 환경부 장관은 직무유기다. 속히 환경정책의 컨트롤타워 가능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오랫동안 등골 빼먹었고 '환경정의'를 유린한 이들은 단언컨대, 스스로 옷을 벗고 떠나든지, 양심선언을 요구한다.


환경부는 황금기를 맞고 있다. 덩치가 커진 만큼 덩칫값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장관은 장관다워야 한다. 환경정의 위해 희생당한 이들은 위로하고 제 자리를 찾아 줘야 한다. '친환경은 모두를 행복하게 건강한 사회 국가 만드는 공공재', '환경은 모든 산업의 꼭짓점'이 됐을 때 비로소 3만 불 시대에 도달할 수 있다. 늦지 않았다.

 

환경백서는 나열식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환경부만의 백서가 아니길 바란다. 우리가 부러워 하는 선진국가들이 발자취에는 쉼없는 정책들로 국민과 꾸준한 스킨십이였다. 탐욕이 넘치지 않았으며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 학자, 근로자, 주부, 학생에 이르기까지 근본을 지키며 공감대 키우는데 노력과 지혜를 담는 시스템, 즉 거버넌스가 참 잘돼 있었다.

 

이를 적극 수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3만 불 국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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