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왕' 슬로건의 꼬임에 넘어가는 현실 안타까워
보편적 가치인 '친환경, 자연주의'는 미래'보물섬' 시대
국민의 보건 안전 소비재가 아닌 '공공재' 다시한번 상기
기업 누구나 설립할 수 있지만 기업가는 아무나 할수 없어야

옥시, 잔악무도한 기업 파멸의 최후

김영민 기자 | sskyman@ecoday.kr | 입력 2016-05-05 19: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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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 르네상스(문예 부흥)혁명은 곧 기계화로 사람을 편안하게 불렀고, 이상이 높아지면서 과학 발전으로 우주시대까지 넘나들게 했다. 인류의 변혁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헤아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풍족한 포만감이 넘치는 세상이 됐다.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한 기업들은 자연에서 착취한 광물들을 재화(財貨)로 축적하는 부를 쌓았다.


물질이 넉넉해지니, 게으름이 늘고, 먹을 것들이 풍족하다보니 버려짐이 많아졌다.


기업의 생명줄은 원가절감이며 최대한 이윤추구를 극대화하는데 목적은 당연시됐다.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다보니, 성과급으로 근로자에게 먹잇감처럼 던져졌고 인간의 본질을 물질만능주의로 왜곡된 기업은 버젓이 사회와 공존하며, 소비자들을 갈취했다. 논문을 조작하고, 여론몰이를 하고, 결탁된 관계를 위하 끊임없이 로비는 정례화했다. 공직자들은 눈감아줬고, 소비자들로부터 빼앗은 이익금은 정치자금으로, 투기목적으로 재활용됐다. 르네상스혁명은 이렇게 본질이 왜곡됐다. 


우리 사회에 10년 쯤 뜬금없이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화들짝 놀란 쪽은 소비자가 아닌 기업들, 매우 보편적 가치인 친환경, 즉 자연주의가 곧 보물섬이라는 시대가 엄습한 셈이다.


20세기와 21세기에 사람들에게 친환경은 곧 자연 그대로였고, 기업들은 친환경이 그리도 좋아하는 돈이 될 줄은 지금까지 모른 척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곧 반환경적이다. 그렇다고 명품이라는 브랜드가 매우 친환경적이다고 단정할 순 없다. 모든 제품에는 최고급에 열광하는 것과 달리 생산하는 모든 전과정을 보면 ‘반환경적’이다. 바로 어떤 목적의 쓰임이 되는 모든 물건에는 소비자 손에 지어지까지 반드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 황폐화된 자원, 씨가 말라가는 생태계들을 잃은 값진 댓가가 포함된다는 점이다.


정부와 기업은 하나다. 오죽하면 정경유착의 고리는 영원불멸한 악숙의 관계라고 했던가.


대단한 도덕성과 윤리적, 학벌적 지위에 있는 무리들까지도, 연결되는 정경유착의 끄나풀은 돈에 억압된 틀에 갇혀 있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주식시세표에 눈이 돌아가고, 둘만 모여도 온통 돈이야기에 쩌든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의 미래는 있는지 지나침에 황폐화된 삶이 난도질 당한 느낌이다.


악덕기업의 횡포는 도를 넘었다. 이런 혼돈의 진화된 21세기, 시각적인 황금시대에, 공간적인 곳에 가장 비싼 광고료로 도배하고, 거대 언론 매체와 공생하면서 장난질도 소비자들의 속이는 속였던 유명한 브랜드의 속물적인 속성을 소비자들은 어리석었다.


지금 소비자들은 기업에게 질문을 던진다. 기업의 생명은 이윤추구와 윤리적 경영에 어느쪽을 택해야 하는지를, 사회적 공헌의 룰모델이 되는 기부를 상상 그 이상으로 초월한 빌게이츠, 마크저커버그의 경영철학까지 바라지 않겠다.


'소비자는 왕'이라고 한 슬로건의 꼬임에 넘어가는 현실적인 경제의 시스템은 소비자에게 이윤을 더 많이 돌려주는데 가장 이상적인 기업이다.


그런데 이런 표본이 완전히 깨졌다. 과대포장의 소비자중심이, 보기 좋게 우롱당한 사회가 됐다.


기업윤리 시스템이 깬 쪽은 늘 기업가였다. 옥시는 분명 배신자다.

 
앞서 수많은 기업들이 지금의 옥시사태처럼 반복의 치부를 드러냈던 악몽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표시돼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기업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잘 보여줬다.


오래전부터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산모, 영유아 등이 사망하거나 폐질환에 걸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투병중이다. 그야말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가장 큰 범죄사로 기록될 것이다.


가습기능을 한다고 방안에 널어눴던 옷가지는 오래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진화했다. 인공적인 가습기도 부족해 이를 소득 세척하는 화학물질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남녀노소 나이불문하고 갓 태어난 영유아부터 아동에서,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 임신부, 환자까지 가리지 않고 죽게 했다.


이러는 동안 국민의 보건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와 광고질에 공조한 언론들꺼지 모른척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민의 보건 안전은 더 이상 소비재가 아닌 공공재'임을 다시한번 상기시키고 싶다.


무조건 많아 팔아야 한다는 장삿치 습성과 엉터리 제품을 허가하고 관리감독하는 정부와 기업 본분을 망각했고, 언론은 묵살 묵인이 그야말로 찰떡궁합을 보여준 사례다. 너무 뒤늦게 문제의 주인공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에서 파는 6가지 제품에 대해 위해성이 확인됐다.


늘 악덕기업들은 정경유착의 교본대로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근본적인 재발방지는 커녕 슬그머니 로비에 더 열을 올렸다.


가습기피해가족과 시민단체가 나서 정부를 압박했다. 2013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결의안이 통과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 사망자만 95명이다. 이미 그 전에 사망한 이들까지 합치면 사망자는 두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검찰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다. 사건 발생 5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전담팀이 꾸렸다. 어처구니 없는 우리 사회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구멍난 사회는 또 있다. 바로 반도체산업 재앙이다. 수십여명이 죽어나갔는데도 정부는 침묵이다. 갓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어린 여성들이 큰 기업의 브랜드만 의존한 채 자신의 생명을 맡겼다. 그결과는 싸늘한 시신뿐이다. 죽어나가는 이들 모두 성분도 알수 없는 고약한 화학물질에 희생됐다.


기업은 누구나 설립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가는 누구나 아무나 할수 없어야 한다.


새삼 SNS의 대명사 페이스북 창립자는 이렇게 자신의 철학을 내던졌다. "대부분 늙어서야 사회에 보답하려고 하는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굳이 기다릴 필요가 있나?"


행복한 그리고 똑똑한 소비자, 신뢰하고 안심하는 제품들이 넘쳐 자연과 사람들을 이롭게 공존하며 그 나누는 기업이 더 없이 필요한 이 시대, 전 재산을 세상에 내려놓는 기업인의 철학에 기웃거리는 우리의 맨얼굴이 화끈거린 이유는 여기에 다시한번 엄숙해진다.


기업가들의 횡포에 명을 달리한 수 많은 고인들의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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