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대표기자

대통령 집무탁자에 놓인 환경보고서

김영민 기자 | news@ecoday.kr | 입력 2018-07-08 18: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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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세상의 변화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환경보호'에 대해 소위 '딱 부러지게 말 못하는 말할 수 없었다. 공직사회나 직장에서조차 금기어인 '환경'은 특수분야로 취급받으며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그 중 관 뚜껑을 여는 걸 달갑지 않는 '한반도 대운하에서 4대강 사업'도 대표적이다. 국가 지도자의 근시안적 설정으로부터 나왔다. 당시 유럽 운하 시찰 겸 관광에서 MB는 "우리 강도 저렇게 변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자, 그를 따르던 이들은 "맞습니다. 꼭 하셔야죠." 박수와 환호로 MB를 구름 위로 올려놨다.


감히 환경정의는 추풍낙엽과 같았고, 권력의 프레임에 빨려들어간 언론, 토건, 토목학자, 수질전문가, 국토부, 환경부, 기재부 모두 영혼을 팔아서 양탄자를 깔아줬다.

 


갓 10년의 세월이 갔다. 이들은 술상 앞, 혹은 뒷골목 커피숍에서 농이 짙은 취중진담으로 감사원을 압박하고 공정위는 입을 침묵했고, 총리실을 허수아비였고 국회는 기능을 상실하고 환경부쯤은 수족을 못 썼다. 거칠 것 없이 여론막기용 물타기로 언론들과 시민단체를 사찰했다. 극단적 패설적인 음흉함은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망령의 전제를 깔고 중상모략에 극치를 달렸다. 철저하게 위선자들이 우글거렸지만 4대강은 크고 작은 생채기에 관 뚜껑이 열렸다.


최근 한 사범대 환경교육과 학생이 청와대에 환경교육에 대해 글로 호소했다. 미국, 호주, 핀란드, 일본, 심지어 중국까지도 환경교육을 정규과목 확대와 교재까지 발간할 정도라고 했다.


우리는 어떤가. 환경교육은 학문 축에도 끼어들지 못하고 있으니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문학은 죽고 인문은 증발한 교육현장이 기울였다. 환경교육이 이롭게 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존립조차 짓밟았다. '환경'이라는 매개체 앞에서 대기업 이윤을 이길 수는 없었다. 4대강은 국가경제발전과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도구이자 큰 대들보라며 정신은 쏙빼놨고 홀렸다. 이런 거대한 담론 속에 과대과잉으로 수십조 원은 사라졌다.

 

'쓰레기 대란'이 터졌을 때 비난의 화살은 환경부를 향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 업무책상에는 국민과 약속한 환경공약, 이를 실행 가능하도록 환경부에서 올라온 환경추진 업무보고서가 기대감이 한층 두껍다.


대통령 역시 어릴 적 뒷마당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에 사색이 잠기며 인성을 살찌웠고 멋지게 물든 낙엽에 바라보며 건강한 자연환경이 삶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며 성장했을 것이다.

 

 

건강심사평가원 자료를 빌리자면 1970년 초반부터 30년 동안 국민 10명당 3.2명은 후천적인 외부(환경오염, 유해물질 차단 시스템 부재 등) 영향으로 병상에서 생사를 갈라놨다. 배경은 간단하다. 고도의 경제성장 발판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유해물질과 편리함이 오히려 누구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복잡한 산업구조 때문이다. 그 대표성이 초미세먼지, 가습기살균제, 라돈침대, 지하철내 석면, 유해화학물질이다.


소프트함으로 페스트 경제를 지향해온 기업들은 환경에 유해가 되는 오염물질 저감 투자에 인색했다, '대량 다량'이 '소비를 미덕'인 공익성까지 정부의 비호아래 부를 쌓았고 하루에 수천만 개의 플라스틱류 폐기물쯤은 가볍게 여겼다. 쓰기 편리하니 버리는 것도 쉬울 수밖에, 환경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생이 정작 호소하고 싶었던 건 4차산업혁명시대에 함께 지켜야 할 '생태계보호'와 '생물다양성존중', '자원순환'과 '신에너지의 효율성'이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주며 행복하게 하는 착한 도구이자 미래 경쟁력의 교과서라고 했다.

 

하지만 아침에 칫솔을 들면서부터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도 플라스틱을 쓰다고 생을 마감한다. 우리 대통령으로는 처음 올해 환경의 날 '플라스틱'에 대한 마음을 밝혔다. 편리함 속에 흔적들은 훗날 후손들과 환경에 긴 고통을 남긴다고 했다. 대통령 자신의 직무책상 위를 플라스틱이 참 많다며 다 치우면 업무를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은 녹색실천을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하루를 보냈는데 참 좋더라!라고 고백이자 환경보호에 동참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진달래꽃이나 바다 고동으로 점심을 때우던 어린 시절의 청정자연이 떠올랐다."며 "좋은 경험과 작은 습관이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아이들에게도 남겨진다면, 그게 지구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불가항력일지 모르지만, 더 큰 불가항력적인 문제는 지구촌은 갈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더 이상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다면 과거 정부에서 지속가능한발전법을 일반법으로 하향해놓으니 '녹색', '저탄소', '에코'의 단어가 식상했고 친환경 기업이 늘수록 국가 경쟁력과 국민의 삶도 함께 성숙된다는 것을 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환경 분야의 세일즈외교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의 국가운명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제로화'는 아주 먼 길을 떠나야 한다. 독보적인 관심은 중국은 '차이나 이코노미 신드롬'에 매년 환경정책 투자비율이 늘고 있다. 환경산업까지도 손아귀에 쥐어가고 있다.


향후 동맹국인 중국과 어떤 환경경제 우위로 지배력을 갖췄을지 상상 그 이상이다. 협력과 대등한 동반관계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측면에서는 불안전한 찻잔 속에 머무는 대기업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의 우수한 기술 보호와 개발에 집중투자를 동시에 사회문화측면에서는 환경교육을 정규화시켜야 옮다.

 
물론 4대강 재자연화는 당연하며 환경오염 배출 기업에 대한 징벌적 법규정은 필수다. 그래야 환경공학도가 4차산업시대에 큰 축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또한 환경의 컨트롤타위가 될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환경부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둬야 마땅하다.

 

KEITI에서 낸 환경산업 매체별 맞춤형 전략 및 실행 보고서처럼 다양성 성장 촉진제와 연구과제를 통한 기술 개발에 탄탄한 지원을 아까지 말아야 한다.


곳곳에서 '플라스틱 Zero'선언은 민선 7기 지방정부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1회용품부터 근절 조례 봇물도 기대된다.

 

 

지구촌 자원고갈은 코앞인데, "1회용컵 하나 정도 손에 들면 어때,?"의 마음들이 부끄러운 시대가 됐다. 더불어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시장경제는 용납되지 않는 때다. 이는 빨라진 지구위기시계의 초침에서 나타난 기상이변 등으로 생존을 위협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한 초미세먼지의 깨우치까지는 반세기가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결코 늦지 않았다. 친환경정책은 대통령 혼자, 환경부만의 힘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현실은 거북이 걸음일지라도, 머그잔, 텀블러를 대신하는 것이 무너지지 않는 철웅성의 환경 지표가 될 수 없다.

 
탈핵시대 원전은 혐오시설이 아니어야 하며, 석유화학 강국답게, 조선 해양 자동차 건설 식품산업 역시 친환경의 강도를 높여야 생존할 수 있다. 이윤추구와 부만 축적하는 경제시스템은 이제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이미 '공해'라는 단어와 1000일을 훌쩍 넘긴 '삼성직업병'은 여전히 '환경의 암흑기'이다. 과대 포장을 부추겼고 인스턴트 문화의 팽창만큼 역주행을 멈춰야 한다. 환경성질환은 대통령에서부터 아이들까지도 열외는 없다.


기후변화의 공포는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빨대 하나, 담배꽁초, 반려견 변에서부터 불씨가 된다. 그 학생이 꿈꾸는 50년 이후 대한민국은 성숙한 친환경 사회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꼭 환경교육이 가치있는 중요한 학문으로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외침이였다.

 

그래서 대통령은 기대치를 앞으로 4년 내내 높을 수 밖에 없다. 바로 155년 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소중하게 쓰임받기를 갈망하는 건 국가지도자의 아주 처절하게 봐왔기에 더 간절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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