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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와 토양 황폐화가 전 세계 농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가운데, 자연의 회복력을 활용하는 ‘재생 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이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경제적 실익까지 증명해내며 농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최근 스페인 지속가능농업연구소(IAS-CSIC)는 안달루시아 코르도바 주 루케(Luque)에 위치한 ‘발레 델 콘데(Valle del Conde)’ 재생 농장과의 협업을 통해 실시한 6년간의 추적 관찰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재생 농업 공법을 도입한 올리브 농장은 토양 건강성과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 인근 천연림에 육박하는 수준의 회복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토양의 부활', 수치로 증명된 재생 농업의 힘
이번 연구의 핵심은 ‘토양은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전제하에 진행된 장기 데이터 측정에 있다. 연구팀은 전통적인 관행 농법(화학 비료 및 제초제 사용, 과도한 경운)을 유지한 필지와 재생 농법을 적용한 필지를 정밀 비교 분석했다.
결과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재생 농법을 적용한 지 6년 만에 토양 내 유기물 함량은 75% 급증했으며, 수분 보유력과 토양 입단 형성(토양 알갱이가 뭉쳐 구조를 이루는 것)의 안정성은 33% 향상되었다. 이는 가뭄이 잦은 지중해성 기후에서 작물의 생존력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생물의 변화다. 미생물 다양성을 나타내는 '섀넌 지수(Shannon Index)'는 3.4를 기록했는데, 이는 인근 산림 생태계의 수치와 동일한 수준이다. 농지가 단순히 작물을 생산하는 공장을 넘어, 스스로 정화하고 순환하는 ‘생태계’로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주요 농법: 땅을 갈지 않고 식물로 덮는다
재생 농업이 지향하는 핵심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초생 재배(Cover Crops): 올리브 나무 사이의 빈 땅을 나대지로 두지 않고 자생 식물이나 녹비 작물로 덮어 토양 유출을 막고 수분을 유지한다.
무경운 또는 최소 경운: 땅을 깊게 갈지 않음으로써 토양 속 미생물 서식처와 탄소 저장 능력을 파괴하지 않는다.
유기질 비료의 최적화: 화학 비료 대신 농장 내 부산물을 활용한 퇴비를 사용하여 토양의 자연 비옥도를 높인다.
이러한 방식은 토양을 탄소 흡수원(Carbon Sink)으로 탈바꿈시킨다. 연구팀은 재생 농업 필지의 탄소 저장량이 관행 농법 대비 현저히 높음을 확인하며, 농업이 기후 변화의 주범이 아닌 해결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경제적 실익과 지역 소멸의 대안
농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수익성’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재생 농업이 경제성 면에서도 우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초기에 투입되는 관리 비용은 일부 증가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비료 및 농약 구입 비용이 절감되고 가뭄 등 이상 기후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면서 경영 안정성이 확보된다.
연구 책임자인 밀라그로스 토루스 카스티요(Milagros Torrús Castillo) 박사는 “재생 농업은 토질 악화로 농사를 포기해야 했던 산간 지역 농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며, “농지 포기로 인한 농촌 인구 감소와 사막화를 막을 수 있는 전략적 카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시장의 반응도 뜨겁다. 유럽 내 프리미엄 오일 시장에서는 ‘재생 농법 생산’ 인증이 고부가가치 브랜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이제 맛을 넘어 지구가 회복되는 과정에 기여하는 제품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재생 농업, 왜 지금인가?
전 세계 지표면의 약 3분의 1이 과도한 경작과 화학 물질 남용으로 황폐해진 상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현재와 같은 토양 파괴가 계속될 경우, 향후 60년 이내에 전 세계 가용 토양이 고갈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스페인의 이번 사례는 농업의 패러다임이 ‘생산량 극대화’에서 ‘생태계 복원을 통한 지속가능한 생산’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비단 올리브뿐만 아니라 과수, 곡물 등 모든 작물에 적용 가능한 이 모델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국가적 과제로도 손색이 없다.
6년이라는 시간은 자연의 시계에서 찰나에 불과하지만, 올바른 농법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죽어가는 흙을 살려냈다. 이제는 정책적 지원과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이 '초록색 혁명'을 가속화할 차례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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