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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생태계의 '열대화(Tropicalization)'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간 스페인 해역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던 열대성 외래 해초가 발레아레스 제도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학계와 환경 당국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발견은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이 지중해 서부 생태계의 지도를 어떻게 뒤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지난 17일, 지중해 고등연구소(IMEDEA)와 블라네스 고등연구센터(CEAB), 그리고 발레아레스 응용생물학 센터 공동 연구진은 마요르카섬 팔마 만(Bahía de Palma)에서 홍해와 인도양에 자생하는 열대성 해초인 ‘할로필라 스티풀라세아(Halophila stipulacea)’의 군락을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스페인 영해 내에서 해당 종이 발견된 최초의 공식 기록이며, 지중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서쪽까지 진출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지중해 해양과학(Mediterranean Marine Science)’ 최신호에 게재되며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할로필라 스티풀라세아는 본래 홍해, 페르시아만, 인도양 등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현화식물이다. 이 식물의 지중해 유입은 19세기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궤를 같이한다. 운하를 통해 지중해 동부로 유입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서진(西進)해왔다.
동부 지중해에서는 이미 안정적인 생태 지위를 확보한 상태이며, 카리브해와 같은 타 지역에서는 토착종을 압도하는 빠른 확산 속도를 보인 바 있다. 이번 팔마 만에서의 발견은 이 열대 식물이 마침내 지중해 서부의 관문인 스페인 연안까지 세력을 확장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외래종의 등장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는 해수면 온도 상승이 꼽힌다. 최근 몇 년간 지중해의 여름철 수온은 최고 30도에 육박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데, 이는 열대 식물인 할로필라 스티풀라세아가 번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발견 지점이 팔마 항구에서 불과 3km 떨어진 지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연구진은 선박의 닻(Anchor)에 해초 조각이 걸려 이동했거나, 선박의 평형수(Ballast water), 혹은 선체 부착물 등을 통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인간의 경제 활동과 기후 위기가 맞물려 외래종의 확산을 부추긴 셈이다.
가장 큰 우려는 지중해의 허파로 불리는 토착 해초지와의 충돌이다. 발레아레스 제도의 보물이라 불리는 ‘포시도니아 오세아니카(Posidonia oceanica)’와 ‘시모도세아 노도사(Cymodocea nodosa)’는 해양 생물의 산란처이자 거대한 탄소 흡수원 역할을 한다.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른 할로필라 스티풀라세아가 세력을 넓힐 경우, 상대적으로 성장이 더딘 토착종들의 서식지를 잠식할 위험이 크다. 이는 단순한 식생 변화를 넘어, 해당 지역의 수산 자원 감소와 해안선 침식 가속화 등 연쇄적인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진은 현재 이 외래 식물이 기존 생태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지역 초식 어종들이 이를 섭식하여 확산을 억제할 수 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IMEDEA 관계자는 “외래종의 초기 정착 단계에서 이를 식별하는 것이 향후 대응 전략 수립에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발견은 지중해 전체가 겪고 있는 거대한 생태적 변이의 서막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환경 단체 역시 이번 사례를 계기로 항만 환경 감시를 강화하고, 수온 상승에 따른 해양 생태계 변화 로드맵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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