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조류 지침 위반 소지… 농업 집약화와 기후 변화가 근본 원인
- 사냥 가능한 종 76.5%가 감소세, 수렵 모델 전반에 대한 재검토 요구

(C) Pixabay
유럽의 들판을 상징하는 철새이자 농경 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종인 ‘메추라기(Coturnix coturnix)’가 멸종의 문턱으로 빠르게 내몰리고 있다. 스페인 최대 조류 보호 단체인 SEO/BirdLife(스페인 조류학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메추라기 개체수의 파멸적인 감소를 경고하며, 정부 당국에 메추라기 수렵의 즉각적인 모라토리엄(일시 중단)과 회복 계획 수립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SEO/BirdLife가 공개한 과학적 모니터링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 내 메추라기 개체수는 1998년부터 2024년 사이에 무려 60.4%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평균 약 3.4%씩 꾸준히 감소해온 결과로,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계절적 변동이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생태계의 구조적 붕괴’로 규정하고 있다.
유럽 전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페인으로 유입되는 주요 경로인 서부 이주 경로의 경우, 과거 100만 마리에 달하던 번식 가능 수컷의 수가 최근 약 39만 마리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약 63%의 감소율을 기록한 것으로, 종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학회 측은 “현재의 수렵 할당량을 일부 조정하는 수준의 미봉책으로는 이 거대한 하락세를 막을 수 없다”며, “수십 년간 이어진 데이터는 개체군이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음을 시여한다”고 강조했다.
메추라기 개체수의 급격한 하락은 단순한 수렵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보고서는 현대 농업 시스템의 변화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농업 집약화는 농경지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과거 메추라기의 안식처가 되었던 논둑, 밭 가장자리의 풀숲, 휴경지 등이 사라지고 대규모 단일 경작지가 들어서면서 이들의 서식지는 파편화되었다. 여기에 살충제와 제초제의 과도한 사용은 메추라기의 주요 먹이원인 곤충과 씨앗을 제거했으며, 이는 번식 성공률의 저하로 이어졌다.
기후 변화 역시 치명적이다. 변해버린 강수 패턴과 기온 상승은 메추라기의 이동 경로와 번식 주기를 뒤흔들고 있다. 학회는 “농업 방식의 전환과 기후 위기가 맞물리며 메추라기는 갈 곳을 잃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의 지속적인 사냥은 종의 멸종을 가속화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SEO/BirdLife는 수렵 중단의 근거로 유럽연합(EU)의 ‘조류 지침(Birds Directive)’을 제시하고 있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유럽 내에서 수렵 대상이 되는 종은 반드시 ‘양호한 보존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개체군이 위기에 처한 종에 대해서는 수렵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법적 원칙이 존재한다.
이미 유럽 및 스페인 사법부의 판례는 경제적·오락적 목적의 수렵보다 ‘생물 종의 회복’을 우선시하고 있다. 따라서 개체수가 반토막 난 메추라기를 사냥 대상으로 유지하는 것은 명백한 법적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 학회 측의 논리다.
또한, 조사 결과 스페인 내 사냥이 허용된 34종 중 76.5%에 해당하는 종들이 보존 상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현재의 수렵 관리 모델이 생물 다양성 보전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메추라기는 단순히 사냥꾼들의 표적이나 관찰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농경지 생태계의 건강함을 증명하는 지표이자, 수천 년간 인간의 삶과 함께해 온 자연의 일부다.
SEO/BirdLife의 모라토리엄 요구는 단순히 사냥을 금지하자는 차원을 넘어, 망가진 농촌 생태계를 복원하고 지속 가능한 수렵 모델을 재설계하자는 제안이다. 학회는 정부에 다음과 같은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즉각적인 수렵 중단: 개체군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안정권에 들어설 때까지 모든 포획 행위 금지.
효과적인 회복 계획 수립: 서식지 복원, 살충제 사용 제한, 기후 적응 전략이 포함된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 가동.
농업 정책과의 연계: 친환경 농법 도입 농가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메추라기 서식 환경 조성.
기사의 마무리에서 학회 관계자는 "데이터는 명확하며, 더 이상의 지체는 종의 절멸을 의미한다"며, "미래 세대에게 들판의 메추라기 울음소리를 물려줄 것인지, 아니면 박물관의 박제로 남길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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