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 ecoticias.com
아르헨티나가 국가적 환경 재난과 정책적 대전환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가 외국인 토지 소유 제한을 철폐하고 환경 보호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입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아르헨티나 사회는 ‘경제 재건을 위한 결단’이라는 정부 측 주장과 ‘국토 소유권과 생태 주권의 포기’라는 반대 측 목소리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6만 4천 헥타르 잿더미 속 추진되는 ‘방화 관리법’ 개정
최근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여 국토를 유린하고 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 12월 이후 화마가 휩쓸고 간 면적만 약 6만 4,000헥타르에 달한다. 기후 위기로 인한 극한의 기상 조건이 산불의 빈도와 강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재난의 와중에 밀레이 정부가 추진하는 ‘방화 관리법(Ley de Manejo del Fuego)’ 개정안은 논란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2020년 제정된 현행법은 화재가 발생한 토지에 대해 일정 기간 부동산 개발이나 집약적 농축산 활동을 위한 용도 변경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는 의도적인 방화를 통한 토지 투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정부가 이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환경 전문가들은 화재를 이용한 토지 확보 및 개발 시도가 급증할 것이라며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외국인 토지 소유 제한 철폐... “자본 유치인가, 주권 포기인가”
정부 정책의 또 다른 축은 ‘토지법’의 근본적인 수정이다. 현행법은 국가 및 지역 단위별 외국인 토지 소유 비율을 전체의 15%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며, 특정 국적의 자본이 허용치의 3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핵심 농업 지역 내 외국인 1인당 소유 면적을 1,000헥타르로 묶어두고 있다.
밀레이 정부는 이러한 제한이 광업, 석유 및 가스, 대규모 아그로비즈니스(Agrobusiness) 분야의 외국 자본 유치를 가로막는 ‘철폐 대상’이라고 규정했다. 대규모 인프라와 부지가 필요한 전략 산업에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토지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자산 가치가 하락한 국토가 외국 거대 자본의 투기장으로 전락할 것이며, 이는 곧 식량 자원과 전략적 영토에 대한 국가 통제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류의 저수지’ 빙하마저 개발의 도구로
가장 민감한 대목은 ‘빙하 보호법’의 개정안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각 주 정부가 빙하 주변 지역(periglacial areas)에서의 광업 활동을 허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빙하와 그 주변지는 수자원 보존과 기후 조절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생태적 보루다.
전문가들은 빙하 인접 지역에서의 광산 개발이 수질 오염과 빙하 융해 가속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제적 이익과 주 정부의 자율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개발 중심의 기조를 꺾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사유 재산권을 강화하기 위해 공공 필요성에 의한 수용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보상금을 현실화하는 등 기득권 중심의 법적 장치를 보강하고 있다.
들끓는 민심... 400여 명의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한 ‘저항의 장’
정부의 독단적인 행보에 대한 사회적 저항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지난 수요일 시작된 공청회에는 과학자, 환경 전문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 400여 명이 넘는 인사들이 직접 참여하여 정부 정책의 부당성을 성토했다. 이 외에도 수천 명의 시민이 서면 및 시청각 자료를 통해 정책 반대 의견을 제출하며 전례 없는 참여도를 보이고 있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생태학자는 “기후 변화의 가시적 피해가 이미 나타나고 있는 시점에서 보호법을 후퇴시키는 것은 미래 세대의 생존권을 현세대의 자본과 맞바꾸는 행위”라고 일갈했다.
벼랑 끝에 선 아르헨티나의 생태계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비용이 ‘국토의 회복 불가능한 파괴’라면 그 성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산불로 타버린 6만 4,000헥타르의 대지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아르헨티나가 처한 환경적 위기를 상징한다. 토지법, 방화법, 빙하법으로 이어지는 정책적 도미노가 생태 파괴라는 종착역으로 향할지, 아니면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를 통해 수정될지는 향후 이어질 입법 과정과 시민 사회의 저항 강도에 달려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금 국토의 정체성과 지구 환경의 책임 사이에서 가장 위험한 시험대에 서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저작권자ⓒ 환경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