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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에너지 정책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 에너지 전환이 단순히 탄소 배출 저감과 산업 구조 개편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인류의 생명과 직결된 ‘공중보건’의 핵심 과제로 격상되는 추세다. 최근 스페인 보건부는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기존 에너지 모델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국가 보건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수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길임을 공식화했다.
스페인 보건부 산하 ‘건강 및 기후변화 관측소’의 에크토르 테제로(Héctor Tejero) 소장은 최근 발표를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재정의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스페인에서 대기질 악화로 인해 발생하는 조기 사망자 수는 연간 약 3만 명에 달한다. 이는 화석 연료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화학 물질이 호흡기 및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인명 피해를 초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보건 당국은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을 단순히 전력을 생산하는 산업 인프라로 보지 않는다. 이를 화석 연료 사용에 따른 입원율과 사망률을 낮추는 ‘강력한 질병 예방 도구’로 규정한 것이다. 즉, 청정에너지로의 이행은 기후 변화 대응을 넘어 국가 보건 안전망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의료적 조치와 다름없다는 논리다.
스페인 인구의 80%가 밀집된 도시 지역은 기후 변화와 대기오염의 최전선이다. 도심의 열섬 현상은 대기 오염 물질의 정체를 심화시키고, 폭염 시기에는 고령층과 만성 질환자의 사망 위험을 급격히 높인다. 보건부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해법으로 ‘경제 전반의 전동화(Electrification)’를 제시했다.
운송 수단부터 가정 내 난방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화석 연료를 전기로 대체하는 과정은 도심 대기질 개선의 핵심 동력이다. 다만, 보건 당국은 이러한 전환이 사회·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점진적이고 포용적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덧붙였다.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경제적 여건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기후 변화의 칼날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날카롭게 작용한다. 소득 수준과 연령은 기후 위기에 대한 적응력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이다. 저소득 가구는 폭염 시 냉방 시설을 이용하기 어렵고, 녹지 공간이 부족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스페인 보건부는 기후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행정 개입을 예고했다. 취약 계층의 주거지 인근 녹지 조성 확대,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지원, 냉방 시스템 접근성 보장 등을 통해 ‘기후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기후 정책이 복지 정책과 결합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보건부는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공중보건 위협 요소로 ‘디스인포메이션(Desinformation, 악의적 정보 왜곡)’을 꼽았다.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축소하거나 재생에너지의 효용성을 왜곡하는 담론들이 긴급한 정책 집행을 지연시키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테제로 소장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투명한 정보 제공이 생명을 구하는 필수적인 의료 행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잘못된 정보가 정책적 결단을 방해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생명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스페인 보건부의 이번 선언은 에너지 정책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단순히 탄소 중립 수치를 달성하기 위한 공학적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매년 공기 중의 독성 물질로 인해 사라져가는 3만 명의 생명을 지키고, 우리 아이들에게 숨 쉴 권리를 되찾아주는 ‘인도주의적 사업’이다.
대한민국 역시 인구 고령화와 도심 집중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스페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에너지 정책을 논할 때 경제성과 효율성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 수명 증진과 의료비 절감이라는 공중보건적 가치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시점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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