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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고립된 낙원, 이스터 섬(라파누이)이 거대 자본을 앞세운 아시아 원양 선단의 무분별한 어획 활동으로 인해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27일, 해양 생물학자 에밀리아 팔마 투키(Emilia Palma Tuki)는 이스터 섬 인근 해역에서 벌어지는 조직적이고 집약적인 조업 활동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원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에서 온 대규모 산업 선단은 현재 이스터 섬의 해양보호구역(MPA) 경계 지점에서 조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레이더, 고성능 센서, 그리고 인공지능이 결합된 ‘스마트 부표’ 등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어군을 탐지한다.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어류의 이동 경로를 정밀하게 추적하는 이들의 조업 방식은 과거의 전통적 어업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지닌다.
문제는 이러한 ‘저인망식’ 포획이 보호구역의 생태적 방어선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양 전문가들은 국제 수역의 법적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이러한 선단이 생태계의 허리 역할을 하는 표층 어종(Pelagic species)을 싹쓸이하면서 해양 먹이사슬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수천 년간 바다와 공존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원을 관리해온 라파누이 공동체는 직격탄을 맞았다. 섬의 어민들은 과거보다 훨씬 긴 시간을 바다 위에서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획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바다를 영적인 근간으로 삼는 라파누이 문화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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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 팔마 투키 연구원은 “이곳은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고향’ 그 자체”라며, “조업을 위해 투입된 선단들이 배출하는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 생태계로 유입되어 산호초 백화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나스카(Nazca) 및 살라스 이 고메스(Salas y Gómez) 해역은 햇빛이 수심 150m까지 도달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독특한 환경을 갖추고 있으나, 최근 침묵의 오염과 남획으로 인해 그 신비로움을 잃어가고 있다.
이스터 섬 인근 해역은 해저 광물 채굴 등이 금지된 보호구역임에도 불구하고, 공해상의 규제 미비로 인해 외부 침입에 속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다. 국제 해양 거버넌스의 취약성은 이스터 섬을 거대 글로벌 자본의 각축장으로 변질시켰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생물 다양성을 간직한 이 지역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라파누이의 위기는 전 지구적인 해양 관리 체계의 부재를 상징한다.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거대 자본과 첨단 기술로 무장한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스터 섬의 절규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생태계의 파괴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국제 사회가 이스터 섬의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해 더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약을 체결하지 않는다면, ‘모아이의 섬’은 머지않아 생명이 사라진 죽은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육지로 남게 될 것이다. 인류 공통의 유산인 바다를 지키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와 강력한 규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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