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갑(甲) 주체'는 '대기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경제를 편중돼 있다.
이런 힘때문인지 최근 대기업 슈퍼 갑질을 등에 업고 날뛰는 이상한 협회가 있다. 마치 사법기관인 듯 착각이 들 정도다. 그들은 일명 언론 길들이기의 구사대 역할자로 스스로 자랑하고 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노조를 파괴하고 공작을 펴온 일명 '구사대'. 이런 형태가 2015년도 꿈틀거려 살아 있다.
"어깃장도 유분수지,", 자신들 스스로가 단두대 역할을 자처하며 노골적으로 힘 없는 언론사를 흔들어놓는 것도 부족해 실명까지 거론하면 찌라시 취급하고 있다.
언론은 권력이 아니다. 기사 역시 권력의 피조물은 더더욱 아니다. 언론보도는 법 테두리에서 정한 진실을 보도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데 있다. 어느 권력기관들 언론자유에 대해, 못질을 간판을 내리게 할 수 없다.
언론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언론이라는 간판을 내건 곳만 7000여개가 넘는다.
언론계는 자영업자격인 1인 미디어시대와 견줄 정도로, 알권리에 목말라 있는 반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치열한 취재경쟁은 당연해졌다. 죽기살기로 단 한 줄 펙트를 써내야 언론은 살아남는다.
대기업의 나팔수 역할을 해온 한 협회는 자기들의 입맛에 따라, 광고집행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심지어 거대 포털 네이버까지 흔들어 놓을 정도로 막강하다. 심지어 네이버 진입을 못하게 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고 있을 정도다. 그럼 네이버에 진입하지 못한 언론은 언론이 아닌가. 천만에 말씀이다. 이들이 속내도 유리거울처럼 잘 비춰지고 있다.
몇 년 전 이 협회는 국내에서 나쁜 언론사를 선정해 보도자료를 뿌렸다. 일명 갑질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피해는 미비했지만 고스란히 나쁜 언론사로 낙인 찍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나. 정글에서 양육강식의 본능처럼, 많은 매체들때문에 대기업들이 힘을 못펴서 일까. 아님 스스로 잘못된 과오에 대해 파해쳐질까봐 두려워서 일까. 언론 몸담은 입장에서 괴리감마저 들 정도다.
풍요속에 빈곤, 수천여개의 미디어 홍수속에 적정한 표현이다.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의 조화가 균형이 맞지 않는 언론산업계의 스스로 황폐화했다는데 한 몫한 것도 사실이다. 덩달아 종편까지 등장으로, 과거 100원이라도 받아 먹을 수 있었던 광고시장이 힘없는 언론사들에게는 이젠 언감생심이다.
이렇게 변방으로 내몰려 있다보니, 눈엣 가시성 제보기사라도 터지면 이들은 자지려질 정도로 민감하게 고약한 썩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분명 언론의 생명줄은 기사와 광고다. 산업의 한 분류이기 때문이다. 종이신문시대를 벗어나 인터넷 모바일 시대로 옷을 갈아입는 것은 시대적 자연스러운 번식이다. 마치 공직자가 퇴직후 관련 산하기관이나 협회로 낙하산되는 것도 비슷하다.
늘 배고픈 언론종사자들은 한 끼만으로 연명을 하질라도, 기사는 하루 삼시세끼를 꼭 챙겨 세상의 등불이며 종이 돼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혹은 올바른 보도, 정의로운 사실보도에도 시장경제논리에 맞게 구걸의 모양새로 돌연변이 매체도 있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좀비와 같이 뜯어먹는 어설픈 어용들도 많다.
최근 이 협회가 말하는 소위 "기사로 엿바꿔 먹는다"는 식으로 매도하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 모든 언론산업의 동력은 '기사 플러스 알파'와 비례하는가.
군주주의적 발상에서 보면 루이 14세처럼 "짐이 곧 나라"라고 할 정도 우월주의에 빠진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언론사들 역시 기사는 광고가 '플러스 알파'라고 대놓고 낚시질을 서슴치 않고 있다. 다만, 대기업의 친위대, 환관노릇을 서슴치 않는 협회는 자신들이야말로 또 다른 권력을 희생물로 보고 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과감하게 싹뚝 잘라내기식 언론길들이기는 슈퍼갑의 전형적인 횡포다.
협회 사무국 직원이 기자로 둔갑해, 언론사를 상대로 칼질을 하는 것은 돌연변이된 '정경유착'으로 볼수 밖에 없다. 그들이 언제부터 언론개혁을 입에 담았고, 찌라시를 운운하면서 언론사의 개목줄처럼 쥐락펴락 했었나.
분명하게 밝혀둔다. 기자를 호칭하면 저널리즘을 흉내내는 협회의 왜곡된 진정성과 본연의 업무로부터 그 허물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거듭 밝혀두지만 무릎을 꿇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 비겁하게 물력으로 언론을 짓밟을려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밝은 세상을 만드는데 상생 파트너가 되는 것은 어떠할지 역으로 제한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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