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 깨닫지 못한 인생 가을에 깨닮음
갈비뼈 인해 건강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돼
[환경데일리 온라인팀]지난달 중순쯤이었다. 지원팀과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다.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며 약주도 한잔했다. 회합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려고 보니 왼쪽 가슴 쪽에 통증이 왔다. 어찌된 셈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틀을 버텼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선산제일병원이라는 곳으로 급하게 갔다. 먼저 X-레이 사진을 찍었다. 신경과 의사의 진단으로는 뼈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근육통인 듯하니 주사를 맞고 약을 3일치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서 돌아왔다.
이틀 정도가 지났다. 여전히 옆구리의 통증은 극심했고 약을 먹은 것도 소용이 없었다. 다시 그 병원으로 갔다. 이제는 초음파를 해보자고 했다. 초음파를 하니 갈비뼈 8번 뼈에서 골절이 됐다는 소견이 나왔다. 복대를 대어 줬다. 5일치의 약을 처방받고 나왔다. 거의 6주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필요하면 입원을 해도 된다는 소견이었다. 처음에 X-레이 상으로 나타나지 않던 골절이 새롭게 초음파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도 좀 특이했다.
일주일의 교육원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귀경했다. 그래도 복대를 하고 있으니 움직임이 좀 편했다. 기침을 해도 통증이 왔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모든 힘이 그쪽 갈비뼈 쪽으로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팔을 쓰는 것도 왼쪽 팔을 들어 올리면 그쪽으로 힘을 받아서 그런지 통증이 동반됐다. 일상적인 생활자체도 쉽지 않는 지경이었다.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원인도 모른 채 갈비뼈 골절상을 입은 것이다. 식구에게서의 핀잔은 말 못할 또 하나의 고충이었다. 다음날 서울의 정형외과 병원으로 다시 진찰을 받으러 갔다. 원장의 얘기는 7번, 8번, 9번 뼈의 골절이라고 명확하게 판정을 내려줬다. 이제는 분명하게 이상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반듯하게 누워 있거나 자세를 바르게 하는 수밖에 별다른 처치나 처방은 없다고 했지만 혹시 몰라서 기침을 제어하고 통증을 감퇴시키는 약을 처방해줘 그것으로 약국에서 약을 지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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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득이 4일간 휴가를 냈다. 종합병원의 검진을 예약하려니 보통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진료의뢰서와 X-레이 초음파 등에 대한 CD를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보라매로 했다가 금요일 밖에 진료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서울성모로 병원을 바꿨다. 진료과는 흉부외과였다. 일단 접수처에서 1층으로 가서 CD를 등록했다. 진료를 받았다. 분명하고 확실한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골절에 대한 얘기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여배우의 얘기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녀는 갈비뼈를 다치고 나서 일상의 소중함과 세상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녀의 심정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사지육신이 멀쩡하게 작동되고 가동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하는 것을 그렇게 아파보고 경험해보면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
소소한 일상생활의 문제가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따분해하고 권태로워하고 귀찮아하던 일상들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고 운신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소담스러운 것이고 귀중한 것임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되는 부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면하고 양치하고 머리감고 머리를 말리고 출근준비를 하고 출근하고 일상적인 업무를 보고 퇴근하고 하는 것들이 그냥 예사로이 그렇게 흘려보냈던 일상들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고 그것이 오랫동안 타성으로 굳어져 왔지만 그것이 얼마만큼 습관화 돼져 왔고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가를 다시 느껴보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그런 동영상을 보고 눈시울을 적셨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렇게 유별나고 색다른 부분이 아니었다. 어느 한 방송사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동영상이었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엄마가 가서 집밥 한 끼를 만들어 먹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대로 밥을 먹었는데 그것이 그들에게 그렇게 익숙했고 짜증스러워했던 고국에서의 일상에서 먹었던 그 밥이요 반찬이요 된장국이고 그릇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순간에 엄마가 나타나 감동의 포옹을 나누며 자신이 원했던 바의 그 일상속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엄마들은 그 한 끼의 밥을 준비하기 위해 10시간을 비행해서 호주로 갔고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모든 그릇 등을 다 준비해 가는 프로젝트였다.
가장 소중한 엄마밥일 수밖에 없었다. 워킹 홀리데이란 나라 간에 협정을 맺어 젊은이들로 하여금 여행 중인 방문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가해주는 제도이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합법적으로 일을 해 부족한 경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다. 보통의 관광비자로는 방문국에서 취업할 수 없으나 젊은이들에게 미지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가 간의 상호이해를 높이고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히 마련된 예외적 제도이다.
이를 위해 발급하는 비자를 워킹홀리데이비자라고 하며, 관광취업비자라고도 한다. 이 비자는 만 18세에서 30세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각 해당국에 한해 1회만 발급하며, 실제 체류기간 1년을 인정한다. 입국 목적은 여행이며, 여행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노동권을 합법적으로 보장받는다. 단기관광에 비해 장기적으로 현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학생비자와는 달리 여러 도시에서 그 나라의 생활을 체험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뉴질랜드·대만·덴마크·독일·스웨덴·아일랜드·영국·오스트리아·이탈리아·일본·체코·캐나다·프랑스·호주·홍콩·헝가리·이스라엘과 워킹홀리데이비자 협정을 맺고 있다.
동영상의 멘트를 몇 개 소개하자면 이렇다. 우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에게 언제나 어려움이 닥치고 외롭고 괴로운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이 든든하게 자신들을 믿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늘 했던 것처럼 그렇게 엄마밥을 해서 그들이 결코 호주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음식을 새롭게 맛보면서 엄마밥의 소중함을 느껴보도록 했다.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한 젊은 친구가 군에 갔다. 그런데 그 친구가 좋아했던 것이 잔치국수였다. 그래서 엄마는 면회를 가면서 그 잔치국수를 해서 갖고 갔다. 아들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정말 행복해 했다는 얘기였다.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할 것들은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평범한 하루하루 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우리의 애환이 달려있고 그렇게 일상적인 것이 그렇게 그리워지고 소담스럽게 느껴지는 때를 맞이하면 우리에게는 '뭔이 중한디'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갈비뼈의 골절을 통해서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됐고 어떤 부분이든지 이제는 호랑방탕하게 무모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며 해취해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인간이 술이나 환상, 유혹 등에 취해 있다가 깨어나서 제정신을 회복한 상태를 테니슨은 'sober'라고 한다. 즉 해취(解醉), 젊은 시절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인생의 가을이 되면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갈비뼈로 인해 건강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되고 철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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