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데일리 온라인팀]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파리협정이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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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 © 환경데일리 |
하지만 파리협정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일 뿐이다. 188개국이 제출한 국가별 기여방안(INDC)이 충실히 이행되더라도 지구 평균 기온은 2.7~3℃ 정도 상승할 것으로 평가되어 2℃ 보다 낮은 수준인 파리협정의 목표와는 차이를 보인다. 비록 5년마다 감축목표 이행을 점검하고 계획을 강화하려는 체제를 구축했지만, 국가별 기여방안은 각국의 정치적 의지에 맡겨지기 때문에 이행이 지연되거나 후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 기후 재원을 누가 언제까지 얼마나 부담할 지도 불확실하며 취약한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도 선진국의 법적 책임이나 보상과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21세기 중반에 순 배출량 0에 도달하겠다고 하면서도 화석연료 경제를 지탱해 온 화석연료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는 조치 등의 구체적 수단도 도출되지 않았다.
사실 파리협정은 195개 당사국의 동의를 거쳐야만 채택되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기후협상은 힘의 역관계를 반영한 산물로 파리협정도 현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수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에는 현실의 변화가, 시장의 변화가 각국의 기후행동과 국제 기후협상을 견인할 것이다.
파리 기후총회는 기술의 변화, 시장의 변화, 도시의 변화를 통해 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둔 에너지 전환이 빠르게 진행 중임을 보여줬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파리 기후협정이 ‘세계 에너지 전환의 분수령’이라고 평가했고 영국의 가디언지는 “200여 국가들이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에 서명”했다고 파리 총회를 요약했다. 또한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 증가 사이의 행복한 이혼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파리협정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에는 미흡하지만 세계 시장에 화석연료로부터 청정에너지로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IEA는 이미 에너지기술전망 보고서를 통해 에너지 부문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데 에너지 효율 향상과 함께 재생에너지의 기여도가 가장 크다고 평가한 바 있다.
특히 2℃ 목표를 달성하려면 발전부문에서 현재 22% 수준인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비중을 2050년까지 63~65%까지 높여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력과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도 저탄소 기술이지만, 원자력은 위험성과 핵폐기물 문제로 사회적 수용성이 매우 낮고 계획에서 발전까지 10년이 넘게 걸린다. CCS는 경제성과 기술적 안정성을 개선하려면 2025년이 지나서야 상용화될 예정이라 조기에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는데 한계가 뚜렷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이미 에너지부문에서 특히, 발전부문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4년 한 해 동안 추가된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은 135GW로 지난 10년 간 증가한 원자력 용량(28GW)보다 4배가 더 많았다.
2009년 코펜하겐 회의 이후 6년 만에 태양광전지 가격이 70%나 하락했고 풍력은 이미 기존 발전과 비교해도 경제적인 발전원이라는 장점이 작용했다. 또한 태양광이나 풍력은 적합한 계획 절차만 진행되면 짧게는 수주일, 길어도 6개월이면 설비를 설치할 수 있어 온실가스 감축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2013년, 전 세계 신규발전설비 용량의 58%를 재생에너지가 차지한 반면 다른 전통적인 발전(원자력과 화력발전)의 신규설비 비중은 42%에 머물렀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될 전망이다. 전력망이 빈약해 전력 공급을 받지 못했던 방글라데시에는 2002년 이후 무려 360만 개의 가정 태양광시스템이 보급되어 2천만 명 이상이 전력 사용의 혜택을 경험하고 있다. 파리 총회에서도 ‘아프리카재생에너지이니셔티브(AREI)1)’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00GW를 보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전 세계 많은 도시들도 재생에너지 전환에 착수했고 재생에너지 기업뿐만 아니라 화석연료 기업들도 재생에너지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이케아, 구글, 나이키, 네슬레 등 주요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100% 사용에 동참할 것을 약속하면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응원하고 있다. 나아가 재생에너지 확대는 에너지 산업에서 에너지저장장치, 에너지관리시스템, 전기차, 스마트그리드 등 새로운 기술의 동반 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국가별 기여방안을 이행하는 핵심이자 1.5℃ 목표와 국가별 기여방안 사이의 차이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좁힐 수 있는 해결책이다.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에너지 전환은 이미 진행 중이며 문제는 속도이다. 파리협정은 전통 경제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이지만 재생에너지 산업계에게는 엄청난 기회 그 자체이다.
파리 기후총회는 정부 대표들의 협상만 중요했던 것이 아니다.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UNFCCC COP21)의 또 다른 핵심 성과 중 하나가 리마-파리 행동의제(LPAA)이다. 협상의 다른 한편에선 도시, 지역, 기업과 시민단체들이 때론 정부와 함께 각각의 수준에서 즉시 혹은 장기적으로 모범적인 기후행동을 모색하고 공유하는 활발한 활동을 진행했다.
LPAA는 파리협정이 2020년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이전인 지금 이미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에너지 효율을 향상하며 지역과 경제의 복원력을 형성하고 숲과 농업의 파괴를 억제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동력이 됐다. LPAA의 틀에서 70여 개의 주요 협력 이니셔티브에 180여 국가에서 1만여 행위자가 참여하는데 2250개의 도시와 150개 지역, 2025개 기업, 424곳의 투자처, 235개 시민단체가 기후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LPAA에서 주목을 받은 행사 중 하나는 지난해 12월 8일에 개최된 도시 기후행동 행사였다. 환경운동가 엘 고어와 세골렌 루이얄 프랑스 환경부 장관, 그리고 세계 각국 도시의 시장 등 수백 명이 자리를 함께 하며 도시가 기후 대응을 주도하고 가속화하자는 5개년 비전을 채택하고 공유했다.
정부 간 협상에만 맡겨두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미래의 운명을 정부에만 맡겨 놓는 것도 너무 의존적인 태도이다. 이런 공감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광범위한 시민 실천, 지자체 행동, 기업들의 자발적 행동을 촉발하고 있다. 시민 기후행동은 참여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서 정부의 수준을 뛰어넘는 도시들의 기후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ICLEI의 기후보호도시 캠페인, 에너지안전도시 캠페인 그리고 유럽 도시들이 주도하는 기후연대(Climate Alliance)의 에너지 전환 활동 등이 그것이다.
이번 파리회의에서도 도시들은 100% 재생에너지 전환의 비전을 공유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도시정상회의와 지자체 기후변화 대응 회의를 다양하게 개최했다. 12월 4일 파리 시청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 시장들이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도시의 기후행동을 촉진하는 파리선언을 채택했다. 미국 정부보다 크게 앞서가는 캘리포니아의 에너지 전환 정책, 시드니의 기후변화 정책, 서울의 에너지 전환 활동 등은 지자체 기후행동 및 에너지 전환의 좋은 사례들이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 특히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인 에너지 정책에서 국내 지방정부의 권한과 책임이 매우 빈약하다. 이것은 온실가스 감축에서 지방정부의 역할도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에너지계획에서 에너지수급은 중앙 정부와 공기업이 대부분 맡고 있고 지방정부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 부분에서 약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에너지 수급, 에너지 가격체계, 에너지 관련 규제에서 지방정부가 어느 정도 권한과 책임을 가질 때 기후행동은 강화되고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은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에너지체제의 전반적인 개편과 더불어 정부의 에너지 관련 업무 중에서 무엇을 어느 정도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것이 기후변화 시대에 적절한 것인지 에너지 분권에 대해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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