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데일리 온라인팀] 기후변화는 두 가지 점에서 여타의 환경 문제와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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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연구원 이지웅 부연구위원 |
첫 번째는 그 영향이 국지적이지 않고 전 지구적이라는 것, 두 번째는 그 영향이 100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발생한다는 점이다. 통상적인 환경 문제와는 다른 기후변화의 특징은 문제 해결에 있어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전 지구적 영향'이라는 특징을 지닌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서는 전례가 없는 모든 국가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1992년 UN기후변화협약(UNFCCC), 1997년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2015년 파리협정(Paris Agreement)으로 이어지는 국제사회의 합의는 바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영향이 매우 긴 기간에 발생한다는 기후변화의 두 번째 특징은 우리에게 현 세대와 다음 세대 간의 형평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필자를 포함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배출하는 온실가스로 인한 100년 후 피해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화석연료를 지금처럼 계속 소비해도 괜찮은 것인가?
세대 간 정의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는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현 세대가 화석연료 소비를 즉시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우리는 이로 인한 비용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만약 우리의 경제적 자원이 무한하다면 당장이라도 가능한 모든 종류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실시해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따라서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투자해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선택 가능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경제학자는 정책의 비용 효율성을 평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이라는 방법론을 이용한다. 비용-편익 분석은 다른 시점 간 발생하는 편익과 비용을 현재 가치화한 하나의 숫자로 환산함으로써 각 대안에 우선순위를 부여한다.
기후변화 정책을 예로 들면, 현재 1단위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여러 대안이 있을 때, 각 대안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이산화탄소 감축으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편익을 동시에 고려하여 하나의 숫자로 평가함으로써 가장 나은 대안을 골라낸다.
일반적으로 비용-편익 분석을 수행할 때 핵심적인 요소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요소는 미래 각 시점별로 발생하는 편익-비용을 추정하는 것으로서, 이는 과학자나 경제학자 등 전문가의 영역에 해당한다.
두 번째 요소는 미래 특정 시점에 발생하는 편익-비용을 현재 시점으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discount rate)을 결정하는 것이다. 평가 대상 정책의 성격이나 주체에 따라 할인율은 달라지는데, 기후변화 대응 같은 장기 공공사업의 경우에는 할인율이 세대 간 정의라는 문제와 밀접히 관련이 된다.
할인율은 본질적으로 시간에 가격을 부과하는 것으로, 할인율이 높을수록 미래에 발생하는 편익의 현재가치는 낮아진다. 즉, 미래세대가 누릴 수 있는 편익을 상대적으로 낮춰 평가한다는 의미이다. 기후변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할인율이 높을수록 화석연료 개발을 미루면 현재가치는 작아지므로 화석연료를 채굴하는 속도는 빨라지게 된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미래에 발생하는 피해의 현재가치는 작아지게 되므로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비용이 높다면 감축하지 않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대로 할인율이 낮다면, 보다 많은 사업 혹은 투자기회가 양(+)의 현재가치를 가지게 되어 현재 가지고 있는 부를 소비하지 않고 투자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따라서 할인율의 수준은 현재와 미래 세대 사이에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영향은 매우 긴 장기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기후변화 정책의 타당성은 공공사업 평가 시 적용되는 사회적 할인율(social discount rate)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미래의 편익-비용을 추정할 때 다른 방법론을 사용하더라도 동일한 할인율을 적용하면 유사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트래거(C. Traeger) 교수에 따르면, 사회적 할인율은 최적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the single most important determinant of optimal mitigation policies in the integrated assessment of climate change)이다.
할인율의 사소한 차이가 현저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은 다음의 두 연구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미국의 경제학자 노드하우스(W. Nordhaus)는 2008년 연구에서 5%를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실질 할인율이라고 보고, 현재 온실가스 1단위 배출로 인한 총 사회적 비용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8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현재 기술 수준으로 이산화탄소 1단위 감축 비용이 $8가 넘으면 굳이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함을 의미한다.
반면, 영국의 경제학자 스턴(N. Stern)은 2007년 연구에서 1.44%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실질 할인율로 보고, 이산화탄소 1단위 배출로 인한 사회적 총비용의 현재가치를 85 달러로 추산했다. 만약 이 수치를 받아들인다면, 온실가스 1단위 감축비용이 85달러가 넘지 않는 수준까지 감축사업에 투자해 온실가스 감축을 실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빠른 시간 내에 화력 발전을 퇴출시키고, 저효율 차량을 폐차시키며, 사무실과 집의 에너지 효율 개선에 대한 투자를 대규모로 실시하는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 거대한 변화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노드하우스와 스턴의 연구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사회적 할인율의 선택에 따라 지금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에 대한 결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사회적 할인율은 현 시점에서 미래 세대 배려 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경제학적으로 나타낸 것으로서, 그 크기에 따라 현 세대의 합리적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방향 수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할인율에 관한 결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기후변화 대응 정책처럼 장기 공공사업에 적용되는 사회적 할인율에 관한 공식적 지침은 아직 없는 상태다.
우리나라의 공공사업 타당성 평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조사 수행을 위한 일반지침 수정·보완 연구를 따르고 있는데, 가장 최신판인 5판(2008년 발간)에서는 현재 중·단기 공공사업에 적용하는 할인율을 5.5%로 명시하였을 뿐, 매우 긴 장기에 걸쳐 효과가 발생하는 사업에 적용하는 할인율에 관한 지침은 없다.
이는 지금까지 기후변화 대응 정책처럼 사업기간이 매우 긴 공공사업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해당 보고서에서도 할인율은 더 낮출 필요가 있지만 할인율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5.5%를 채택했다고 밝힌 만큼, 장기 공공사업을 평가하기 위한 사회적 할인율에 관한 공식적인 지침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EU나 미국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같은 장기 공공정책에 대해 1~4%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으며,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현 수준인 5.5%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결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할인율을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으로 확정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에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을 넘어 보다 많은 사회구성원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할인율은 세대 간 정의에 관한 현 세대의 사회적 합의를 수치화한 것으로, 세대 간 정의라는 문제는 일부 전문가에게 맡기기에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할인율에 대한 논의는 가능한 빨리 시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월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체계 개편방안을 통해 올해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감축 로드맵과 기후변화 대응 기본계획을, 내년에 2050년 장기 저탄소발전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효율적인 기후변화 대응 전략 수립을 위해서는 각 정책에 관한 합리적인 타당성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할인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할인율 결정을 위해서 모든 관련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합동기구를 구성하거나, 민관이 모두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장기 공공사업에 대한 사회적 할인율 지침을 마련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는 정치적·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 국회에서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법제화 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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